"비키니 입고 요리해야 밥맛 나지"…학교비정규직도 '미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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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선생님이 급식실로 식사하러 오시더니, 저를 보며 ‘음식 만드는 사람이 비키니를 입고 있어야 밥 먹을 맛이 더 나지’라고 하셨어요.”(조리실무사 A씨)

5명 중 1명, 성폭력 경험, 대다수 참고 넘겨 #"위계상 열악한 위치 악용한 성희롱·폭력"

“예순이 넘은 교장 선생님이 저희 집 앞으로 찾아오셔서 나가봤더니 '같이 밥 먹고 데이트를 하자'고 하셨죠. 일단 그날은 거절할 수 없어 조심조심 따라다녔고 출근한 뒤에 주변에 도움을 청했더니 ‘알아서 조심하라’고 하시더라고요.”(교무행정사 B씨)

초·중·고교에서 근무하는 영양사·조리사·사서 등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에 동참하고 나섰다. 7일 민주노총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서울교육청(서울 종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회 어느 곳보다 인권이 존중되고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해야 할 학교라는 공간에서 성폭력과 차별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주로 학생·여성·비정규직 등 학교 조직의 위계서열 상 아래에 자리한 이들에게 폭력과 차별이 행해진다”고 밝혔다.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주최로 열린 미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학교비정규직들의 성희롱 및 성폭력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전국교육공무직본부]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주최로 열린 미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학교비정규직들의 성희롱 및 성폭력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전국교육공무직본부]

그러면서 “특히 이중으로 차별받고 있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취약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미투’에 동참해 목소리를 내려 한다”고 말했다.

이날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학교비정규직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조사는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4일까지 전국 504명의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조사에 따르면, 학교 내에서 성희롱·성폭력을 경험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는 21.2%로, 5명 중 1명꼴이었다. 또 성희롱·성폭력을 직접 목격했다는 응답자도 31.9%나 됐다.

성희롱·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대처법을 묻자, 응답자의 절반인 50%가 ‘불이익이나 주변 시선이 두려워서 그냥 참고 넘어갔다’고 답했다. '싫다는 의사를 밝히고 중지를 요구했다'는 응답자는 32.5%에 그쳤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성희롱 예방교육의 만족도를 묻는 말에는 '받아본 적 없다'는 응답자가 27.6%나 됐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이민정 조직국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위치상 늘 해고에 대한 부담과 위기감을 안고 생활한다”면서 “이들의 열악한 상황을 이해해야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 사안을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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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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