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은 시인이 쓴 위안부 피해 할머니 추모시비 철거됐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수원시 올림픽공원 내의 평화의 소녀상. [김민욱 기자]

수원시 올림픽공원 내의 평화의 소녀상. [김민욱 기자]

성 추문에 휩싸인 고은(85) 시인이 과거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추모하려 쓴 시가 새겨진 시비(詩碑)가 철거된 것으로 확인됐다.

수원 평화의 소녀상 하단에 설치 #시, 성추문 휩싸이자 지난달 폐기 #KT구단 ‘고은 캐치프레이즈’ 중단

경기도 수원시는 권선구 권선동 올림픽공원 내 ‘평화의 소녀상’ 아랫단 우측에 설치돼 있던 고은 시인의 추모 시를 지난달 말 철거했다고 6일 밝혔다. 고은 시인의 성추문 의혹이 줄이어 나오면서 수원지역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철거여론이 들끓었었다. 성폭력 논란의 중심에 있는 시인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추모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수원시는 팔달구 장안동 한옥기술전시관 뒤편 시유지(6000㎡)에 건립하기로 계획했던 고은 문학관의 철회도 결정했다.

수원 올림픽공원 내 평화의 소녀상은 2014년 5월 제막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기리기 위해 지역 종교계와 여성계,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건립추진위원회(현 수원평화나비)를 발족해 모금한 9000여만원의 성금으로 소녀상 등을 세웠다. 당시 안성에서 수원 ‘문화 향수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 고인 시인이 추모 시를 헌납했다. 건립추진위가 고인 시인에게 추모 시를 써 달라고 요청해 이뤄졌다. 시는 『꽃봉오리채/꽃봉오리채/짓밟혀 버린 모독의 목숨이던 그대여/…』로 시작한다.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못다 핀 꽃’으로 상징된다.

소녀상에 설치됐다 최근 철거되면서 깨진 고은 시인의 추모시비. [사진 기호일보]

소녀상에 설치됐다 최근 철거되면서 깨진 고은 시인의 추모시비. [사진 기호일보]

평화의 소녀상의 소녀는 아랫단을 발로 완전히 디디지 못한 채 의자에 앉아 있다. 발뒤꿈치가 떠 있는데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온 소녀지만 모진 고통에 편히 정착하지 못한 생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런 발뒤꿈치 옆에 추모 시가 새겨진 시비(세로 70㎝·가로 50㎝)가 놓여 있었다. 현재 시비가 철거된 자리엔 빈 비석이 채워져 있다.

김향미 수원평화나비 공동대표는 “고은 시인의 성폭력 (가해) 논란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기리는 추모 시를 요청하지 않았고 소녀상 곁에 설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지원시설인 나눔의집 측은 고인 시인의 철저한 반성을 촉구했다.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고은 시인은 어려운 고백을 한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원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구단 케이티 위즈도 최근 고은 시인이 헌정한 짧은 시로 된 캐치프레이즈(‘허공이 소리친다 온 몸으로 가자’) 사용을 중단했다.

수원=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