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크」못 벗어난 채 「표류」계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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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총선이 끝난 지 1개월이 지났지만 민정당은 아직도 총선 패배의 쇼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회개원을 앞두고 24일 국회에서 열린 민정당의원 총회는 충격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민정당의 표류하는 모습만 부각시켰다.
개원협상에서 야당에 끌려 다니고(?) 아직도 정국전망에 대해 뚜렷한 설계를 세우지 못하고 있는 당지도부에 대해 몇 명의 의원 당사자들은 민정당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강력히 대처해줄 것을 요망했고 당지도부 또한 집권 제1당임을 누차 강조하면서 새로운 변화와 다짐을 내놓았지만 오히려 민정당이 부닥쳐 있는 위기상황 같은 것을 표출시켜 놓은 감만 짙다.
정국의 주도권을 잡고 가야겠지만 원내 소수의석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한계가 있는 데다 그나마 당이 힘을 합쳐 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구심력을 갖고 있지 못한 때문이다.
민정당은 최근 당사무국 요원을 거의 승진시키고 자리바꿈을 했다. 사기를 불어넣어 주려는 조치다.
또 조직강화특위도 구성해 곧 원외지구당을 정비하고 항공모함처럼 둔중하게 비대해진 조직의 군살을 제거하기로 했다.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려는 체중 조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의 앞날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여권내 정치의 무게 중심이 민정당에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단적인 예가 5월초 민정당의 체제개편 후 거의 매일 열리다시피 하고 있는 당정회의다.
이 회의에서 그 동안 개원교섭· 대야협상 전략 등의 모든 대책이 검토되고 중요한 방향이 결정되어 왔다. 가끔 정부쪽 관계장관·안기부장까지 참석하는 이 회의의 소집과 주재는 청와대 쪽이 맡고 있다.
당의 참석멤버는 박준병 사무총장, 김윤환 원내총무 두명 뿐이다. 구태여 분류한다면 김총무도 당인이라기보다 청와대 쪽에 더 가까운 인물이다. 당의자체 결정력이 현저히 축소되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윤길중 대표위원이 정국주도를 외쳐도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최근 있었던 하위당직 인선에서도 당의 발언권은 미약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따라서 당지도부의 통제력이 당내부에 먹혀들지 않는 상태가 되어 있다.
민정당을 비관적으로 진단하는 또 한가지 이유는 당의 통합력 상실이다.
총선 이전 공천에서부터 여권의 핵심지도부가 구상했던 것은 창당초기의 민정당 인맥을 끊어내고 대신 새로운 노태우 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인맥을 구성해야할 새 인물들이 상당수 낙선함으로써 그 구상은 무너졌다. 창당 이래의 민정당 흐름은 위축되고 대신 김재순·박준규·이도선·오유방씨 등 구 공화당계 인사, 새로 영업한 군 출신, 권력과 유착해 정계 진출의 길을 잡은 일부 재력가들이 두서없이 뒤섞이게 됐다. 그들을 횡으로 연결한 이념을 굳이 찾아내자면 보수안정 성향이겠지만 그밖에 그들간의 정치적 유대감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있다.
더우기 앞으로의 당내 세력판도와 관련해 당내에 미묘한 갈등과 알력이 있다.
종로에서의 3선을 바탕으로 스스로 정치적 무게를 강조하는 이종찬 정무장관, 당 조직을 장악한 박준병 사무총장, 대야협상 창구를 맡아 정치적 각광을 받고 있는 김윤환 총무의 정치적 행동반경이 서로 일치한다고 만은 하기 어려우며 당내에서 가장 다수 의석을 배출, 발언권을 갖게된 경배출신과 경기출신들 사이에도 이념적이든 정치적이든 연결고리가 단단한 것은 아니다.
더우기 일부 낙천 또는 낙선 인사들은 그들 나름으로 「원외세력화」하는 조짐도 보이고 있다. 권익현씨가 따로 사무실을 냈고 그 밖의 의원들 중에도 따로 사무실을 차리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사무실에는 제법 많은 낙천·낙선의원들이 모여들고 있으며 이들은 당의 핵심지도부에 대한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낙선 원외지구당위원장을 엮으려는 중앙당의 노력도 별로 먹히지 않는 눈치다. 공천과 총선에 대한 본질적 책임론이 아직 강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민정당내에 세력분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여러 곳에서 여러 갈래의 삐걱거리는 소리들이 불협화를 빚어내고 있는 상태다. 지금까지 여권의 통합력은 통치권력이었다. 여권이 통치권력을 장악하고 있음에도 불구, 이를 통합시키지 못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원인은 범여권 내부에 나타나고 있는 정국대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격차와 그로 인한 균열 때문인 것 같다.
민정당을 이끌어온 청와대와 당 지도부는 정국 운영에 대해 기묘한 낙관론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야당의 원념을 안이하게 판단했고 광주사태나 제5공화국 비리조사가 여권내부에 미칠 파급 효과를 가볍게 본 것 같다. 여권 핵심지도부는 노체제를 공고히 굳히고 제5공화국과의 단절을 확실히 하는 조치들로써 사태수습이 가능할 줄로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야당 3김씨의 압박이 정권적 차원에서 구체화되어갈 조짐과 비례해 여권내부의 압력의 강도 역시 높아져갈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여권의 심부에서는 광주사태와 제5공화국 비리 조사의 대상이 김두환 전 대통령과 군부에 직접적으로 미칠 경우에 대한 불만이 노골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에서는 개원협상의 방식, 정부의 구속자석방 및 유화제스처 등 대야자세 변화에까지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이런 내부 압력에 밀러 당정핵심지도부는 경성으로 돌아서고 1노3김 청와대회담을 사실상 무산시켰다. 앞으로는 구속자 문제를 비롯해 특위구성.
조사 등에 있어서도 강경임장을 고수하는 방향으로 움직여나갈 방침을 세우고 있다.
최근 여권 내에서는 강경 선회의 신호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강경자세 한가지로 사태가 해결되던 시절이 지났음은 민정당 측도 너무나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3김이 그들의 원내 우위를 차기의 대권경쟁으로까 몰아갈 작정이라면 그들의 정치공세는 늦추어지지 않을 것이다. 3김 중에서는 그들의 정치압박이 강기화되면 민정당의 잠식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 견해마저 있다.
민정당 내부에서도 야당 주도에 의한 5개 특위가 가동돼 그 파문이 정국 전체를 휩싸고 그것이 신임투표와 지방자치제선거로 계속 이어질 경우 중대한 존립의 위기가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암울한 전망을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당내 일각에서는 민정당이 당원에 대한 연수교육재개를 논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치력을 회복할 근본적 처방을 강구해야할 점이라는 주장을 펴고있다.
만약 민정당이 협상과 교섭을 통한 정상적인 정치력으로 그들이 부닥친 난제를 수습해내지 못하면 결국 정국 전체가 예측하기 어려운 「권외 의 중압에 눌려 요동치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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