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 한계로 막판 줄다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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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3대 국회가 개원되면서 광주사태·5공화국비리조사 등 국회의 특별위원회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조사활동을 벌일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끌려가는 민정당측이 특위의 조사에 한계를 설정하자는 생각이나 야당측은 막무가내다.
정국 전체에까지 파급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특위의 구성을 앞두고 여야의 절충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민정당>특위를 대하는 민정당의 모습은 「억지춘향」격. 마지못해 끌려가자니 곤혹스러워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광주사태 진상조사특위와 5공화국 비리조사특위는 각각 정권의 존립 기반을 뿌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는 폭발성을 지니고 있으며 나머지 특위들도 상황에 따라선 심각한 상처를 안겨줄 수 있는 성격의 것들이어서 최선책은 만들지 않는 것이 민정당의 솔직한 심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과반수를 야당에 뺏기고 보니 이젠 피할래야 피할 도리가 없게됐다.
어차피 응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민정당이 마련한 대책으로는 △특위숫자를 줄이고 △특위의 조사대상·범위를 축소하며 △조사과정에서 정치적 선전보다 사실의 조사에 한정시킴으로써 뇌관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국정조사권을 발동하자면 법률의 제정 등이 필요한데 국회의 조사에 가급적 법적인 제한을 둘 작정이다.
개원일자를 늦추면서까지 개원국회에서의 특위구성을 반대하고 나선 것도 특위가 13대국회의 상징화가 되는 것을 막자는 생각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부터는 법과 절차상의 이유를 들어 야당측 논리의 허점을 지적해내는 등의 방법으로 특위숫자 줄이기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태세다.
5공화국 비리조사 특위에 대해선 그 동안 명칭부터 특정사안을 지칭한 것이 아니어서 적절치 않다는 지적을 해왔는데 「일해연구소 문제 등 권력형 의혹사건조사 특위」로 하고 조사대상도 제한할 작정이다. 김중위 대변인은 23일 『김두환 전대통령이 조사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고 「성역」을 구획하고 나섰다.
지역감정해소 특위에 대해선 그「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선거부정조사 특위는『법원에서 판단할 사항이지 입법부가 간여할 사항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라고 제동을 걸고 있다.
광주사태진상조사 특위에 대해서도『군의 명예 등을 건드려선 서로가 불행하게 된다』는 등 무형의 압력도 가해지고 있다는 소문이다.
결국 아무런 시비거리 없이 남은 것은 비 민주악법 개폐 특위 정도.
그러나 이러한 대책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은 민정당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임시국회의 구체적인 의제 등을 논의하면서 본격적으로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태로 막후 절충을 통한 회유·설득으로 뇌관 제거 노력을 벌여볼 작정이다.

<평민당>광주사태조사 등으로 정국의 기선을 장악할 작정인 평민당측은 특위활동 목표를 5공화국의 유산 청산에 두고 이 문제를 끌고 나가 올림픽 후 신임투표에까지 영향을 미치겠다는 복안이다.
때문에 5개 특위에 대한 관철의지나 기대감이 어느 당보다 강하며 임시국회에서의 5개 특위 동시구성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 선」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미 평민당은 국회특위구성에 앞서 지난 7일 전당대회에서 김대중총재가 밝힌 5공화국 유산 청산을 구체화하기 위해 당내에 13개 특위를 구성, 곧 별도의 작업에 착수할 태세인데 만약 민정당이 5개 특위의 시차구성을 들고 나온다면 당내 특위를 풀 가동,「융단폭격」을 가하겠다는 자세다.
평민당이 국회5개 특위중 주공 목표로 삼고있는 것은 역시 광주사태진상조사 특위와 5공화국 비리조사 특위다.
이들 두 특위는 선거부정조사 특위와 함께 국정조사권을 여하한 일이 있어도 발동시키겠다는 각오인데, 다만 5공화국 비리조사 특위가 「너무 포괄적」이라고 민정당이 일반론적 반대의사를 표시하면 「전전대통령 일가비리 및 대형부정사건조사 특위」로 압축시킬 수 있다며 역공을 취할 준비까지 하고 있다.
평민당은 특히 광주사태진상조사 특위에 대해서는 우선 총재부터가 당사자이기 때문에 공정한 조사를 위해 위원장자리를 민주당측에 양보할 수 있다는 자세.
평민당측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재심요구, 광주시민들의 당시 사태 재심요구 등도 병행시켜 여당측이 거부할 수 없도록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 나갈 작정이다.

<민주당> 국회가 개원만 되면 앞장서서 5공화국비리·광주사태조사를 밀고 나갈 계획.
최형우 원내총무는 23일 『국회개원만 해놓으면 임시국회에선 야권이 주도권을 잡는 것은 명백한 일』이라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민주당은 5개 특위. 일괄타결을 고집하지 않으나 우선 순위는 광주사태 진상과 5공화국 비리조사가 나머지 특위에 비해 시급한 것으로 보고있으며 특위명칭 등에도 신축성을 보일 수 있다는 태도.
최총무는 그러나 『임시국회에 들어가면 바로 조사에 착수하도록 해 철저히 파헤칠 것』이라며 『특위조사대상을 한정할 수 없고 활동기한은 충분하고도 납득할만한 조사가 될 때까지 무제한』이라고 밝히고 있다.
민주당은 올림픽이전에도 특위가 적극적인 활동을 벌일 수 있도록 신속한 특위활동에 역점을 두고 있다.

<공화당>임시국회가 열리면 즉시 5개 특위를 모두 구성하고 5공화국비리조사특위·광주사태진상조사특위·선거부정조사특위에 대해서는 국정조사권을 발동시킨다는 구상이다.
공화당은 총선 직후 이미 당내에 악법 개페 특위와 5공화국 비리조사특위를 구성해 조사작업을 진행중이며 특히 이 부분을 집중 추궁할 생각.
진상조사는 성역이 없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엄정히 이뤄져야하며 재발을 막을「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는 방침.
김용채총무는 5공화국 비리조사 특위에 대한 민정당측의 반발에 대해 『명칭은 합의한 것이 아니니 내용이 크게 훼손되지 않는다면 타협의 여지가 있다』며 탄력성을 보이고 있으나 특위 구성 및 조사권 발동 자체는 양보할 의사가 없다.
조사 시한은 특별히 정하기보다 차근차근 자세히 완결한다는 생각인데 김종비총재도 『시한을 정해 활동을 끝내고 그래도 국민이 납득하지 않을 때엔 어떻게 하느냐』며 시한을 정하기보다 「국민이 납득할 정도로」완전히·진상 규명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허남진·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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