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 그의 열정과 혜안으로 일본, 근대의 눈을 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
허호 옮김, 이산, 376쪽, 1만9000원

시대착오적 책을 소개하는지 모르겠다. 국가보다 기업, 민족보다 개인의 가치가 앞서는 21세기에 100여 년 전 일본의 '부국강병론'을 읽으라고 권하기가 다소 쑥스럽다. 하지만 재미있다. 나아가 시사성이 크다. 특히 자서전의 장점인 아기자기한 에피소드가 풍부하다. 사람의 냄새가 가득하다. 개인을 통해 시대를 읽는 즐거움이 만만찮다.

주인공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1834~1901). 일본 메이지 시대를 상징하는 계몽사상가다. 1만엔권 지폐에 얼굴이 들어갈 만큼 근대 일본에 미친 영향력이 대단했다. 그가 지은 '학문을 권함' '문명론의 개략'은 지금도 일본인의 필독서로 꼽힌다.

책에는 '인간 후쿠자와'가 알알이 박혀있다. 19세기 중엽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근대 일본의 대표적 지성으로 성장한 그의 면모를 단숨에 알 수 있다. "나는 무슨 일이건 항상 최선을 다했으며, 게으름을 핀 적이 없다." 누가 이토록 자신있게 자기 삶을 돌아볼 수 있을까. 그런데 이게 과장이 아니다. 신학문을 향한 그의 열정과 노력에 고개가 주억거려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일례로 책 베끼기. 서양 책이라곤 거의 볼 수 없었던 시절, 후쿠자와는 보고 싶은 책을 일일이 붓으로 옮겨야 했다. 가난한 서생이었던 그가 비싼 책을 산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던 일. 네덜란드에서 나온 축성서(築城書) 한 권을 베끼는 데 20~30일이 걸렸다. 방문을 틀어 잠그고 불철주야 '작업'을 했다.

후쿠자와의 모토는 개화.개방이다. 봉건주의 일본의 발전을 위해선 서양문물 흡수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서 한학을 배운 그였지만 알파벳을 익힌 이후 유학(儒學)에는 '발톱의 때'만큼도 가치를 두지 않았다. 봉건주의의 신분차별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른부터 아이까지 상하귀천이 지배이념이었던 당시 과학과 평등을 앞세운 서양은 그에게 의심할 바 없는 발전모델이었다.

책에는 19세기 일본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봉건 말기부터 메이지 유신까지, 이른바 일본의 근대화를 엿볼 수 있다. 문호개방과 양이(攘夷.서양배척)의 갈등도 생생하다. 서양문명의 일방적 독주에 대한 반성이 키워드로 부상한 요즘에 견주어 판단할 일이 아니다. 어차피 개인이든, 국가든 '시대의 자식'이지 않은가. 애써 익힌 네덜란드어를 접고 다시 영어를 배워야 했을 때의 당혹감, 미국.유럽 방문에서 목격한 문화충돌 등 후쿠자와 개인의 경험은 19세기 후반 세계 속 일본, 그리고 아시아를 읽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

후쿠자와는 철두철미 학자였다. 저술.번역.교육.언론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했지만 정치권에는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공연히 거드름이나 피우는 관리의 추태는 내 성격상 불가능했다"는 '딸깍발이 정신'이 오히려 새롭다. 거의 신앙에 가까웠던 그의 서양숭배는 또 다른 시각에서 평가할 일이다.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박정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