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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따라 춤추는 재건축 정책, 집값 대책과 분리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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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호 03면

아파트 안전진단 강화 후폭풍

강남권 아파트 가격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대책에도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간 7.5% 올랐다. 재건축을 추진하는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올 들어 1억원가량 뛰었다. [중앙포토]

강남권 아파트 가격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대책에도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간 7.5% 올랐다. 재건축을 추진하는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올 들어 1억원가량 뛰었다. [중앙포토]

30년. 한 세대가 지나고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시간이다. 공자는 30세를 자리 잡고 굳게 일어선다는 뜻의 ‘이립(而立)’으로 불렀다. 인간이 낳은 제도도 충분히 성숙할 시간이다. 하지만 주택 재건축은 갈수록 꼬이기만 한다. 지금 주택시장은 온통 재건축으로 시끌벅적하다.

30년 전 1988년 재건축 조합 등장 #98년 안전진단 도입해 규제 시작 #안전진단 강화하고 부담금 부과 #전방위 압박에도 강남권 급등세 #개발이익 ‘불씨’ 안 꺼지면 한계

 재건축이 제도적으로 생긴 것은 1988년이다. 주택건설촉진법(현 주택법)이 개정돼 ‘기존의 노후·불량주택을 철거하고 그 대지 위에 새로운 주택을 건설하고자 하는 경우 주택조합을 설립할 수 있도록’ 재건축 조합 설립을 허용했다. 노후·불량주택은 ▶건물이 훼손되거나 일부가 멸실돼 붕괴나 기타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는 주택 ▶건물이 준공된 후 20년이 지나 건물의 가격에 비해 과다한 수선·유지비나 관리비용이 소요되는 주택 ▶건물이 준공된 후 20년이 지나고 부근 토지의 이용 상황 등에 비추어 주거환경이 불량한 경우로서 건물을 재건축하면 그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현저한 효용의 증가가 예상되는 주택으로 정해졌다.

 당시는 재건축 수요가 많지 않았다. 1990년 기준으로 서울 주택이 143만 가구이고 아파트는 두 가구 건너 하나꼴인 50만 가구였다. 20년 넘은 전체 집은 10가구 중 하나인 14만 가구였다. 아파트는 100가구 중 하나(7800여 가구)에 불과했다. 유소년기를 지나며 재건축은 주택시장의 ‘문제아’로 떠올랐다. 1998년 정부는 무분별한 재건축을 억제하겠다며 안전진단을 도입해 재건축에 문턱을 만들었다.

정부, 정치적 부담 각오하고 진화 나서

20년 뒤인 지금, 정부는 재건축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초 재건축부담금 폭탄을 예고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올해 부활한 초과이익환수제에 따라 앞으로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에 조합원당 최고 8억4000만원의 재건축부담금이 나올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달 말엔 재건축 진입로를 사실상 봉쇄했다. 안전진단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안전진단 기준 변경으로 재건축이 쉽지 않게 된 목동 등의 주민들이 집단반발하며 정부에 맞섰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는 정치적 손실을 각오하고 재건축 진화에 나섰다. 그만큼 뛰는 강남 집값을 잡는 게 절실했다.

 지난해 8·2주택시장안정화방안 이후 잠시 꺾였던 집값은 강남권을 중심으로 다시 오르기 시작해 올해 들어 해가 바뀐 뒤로는 급등세를 나타냈다.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5개월간 강남권 아파트값 상승률이 7.5% 정도로 8·2대책 전 5개월간 3.6% 선의 2배가 넘는다. 올해 들어 1~2월 강남권 집값 상승률과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버블 논란이 일었던 2000년대 중반 수준을 뛰어넘었다. 올해 1~2월 강남구 아파트값 상승률이 5.09%다. 앞서 연초 2개월간 가장 많이 오른 때는 2006년(4.1%)이었다. 재건축을 추진하는 강남구 대치동 은마는 올해 들어 1억원가량 뛰었다.

 안전진단 강화로 재건축은 사면초가다. 재건축 허용 연한에 해당해 재건축 기대감을 갖게 된 서울 10여만 가구의 아파트가 안전진단에 가로막히게 됐다. 이미 안전진단을 통과한 단지는 조합 설립 이후 준공 때까지 조합원 명의 변경 금지로 거래할 수 없다. 준공되면 재건축부담금이 기다린다.

 정부 기대와 달리 이 같은 전방위 압박으로 재건축 집값이 쉽게 꺾일 것 같지 않다. 정부는 과거 노무현 정부가 강화하거나 도입한 재건축 규제를 거의 그대로 재활용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강력한 ‘말뚝 규제’도 재건축을 가두지 못했는데 말이다.

 재건축이 정부의 온갖 규제에도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는 것은 막대한 개발이익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재건축으로 건축 규모가 늘어나면서 일반에 팔 수 있는 일반분양분이다. 집값이 비싼 강남권에선 일반분양수입이 워낙 많아 사업비를 충당하고 공짜로 새집까지 받는다. 여기다 억대의 환급금이 나오기도 한다. 일반분양 수입으로 사업비로 쓰고도 남아서다.

 정부가 재건축의 건축 규제를 최대한 완화해 노다지를 풀어놓은 셈이다. 개발이익이 없어지지 않는 한 재건축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또 집값에 춤추며 급회전을 반복하는 정부 정책은 시장의 불신을 키우고 불안감을 조장한다. 경제에서 불안은 묻지마식의 과잉수요로 이어진다.

노후 아파트 급증, 강남권 네 채 중 한 채 꼴

불과 3년 전인 2015년엔 층간소음이 심해도 재건축할 수 있게 하겠다며 정부는 안전진단 기준을 대폭 낮췄다. 재건축은 시작에서 완공까지 7~10년 정도 걸리는 장기사업이다. 불과 몇 년마다 바뀌는 ‘냄비 대책’은 시장을 롤러코스터에 태운다. 재건축이 정부 규제를 피해 숨바꼭질을 하면 재건축을 통한 신규 주택공급은 들쭉날쭉하게 된다. 불안정한 주택공급 역시 시장을 불안하게 만든다.

 재건축 제도는 집값 대책이어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져 재건축을 다루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은 1조에 ‘도시기능의 회복이 필요하거나 주거환경이 불량한 지역을 계획적으로 정비하고 노후·불량건축물을 효율적으로 개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도시환경을 개선하고 주거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주거환경이 빠르게 노후화하고 있다. 서울에서 지은 지 30년 이상 된 아파트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2000년엔 0.3%에 불과했지만 2016년엔 11.3%다. 강남권에선 27%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의 하나로 35조 3항에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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