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文 “日에 특별대우 요구 안해” 위안부, 보편 인권 문제로 규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제 99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제 99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일 3·1절 기념사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서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전쟁 시기에 있었던 반인륜적 인권범죄행위는 끝났다는 말로 덮어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제99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불행한 역사일수록 그 역사를 기억하고 그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이라며 이처럼 말했다. 또 “일본은 인류 보편의 양심으로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가 타결한 12·28 위안부 합의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거나 일본의 추가 조치 필요성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외교 소식통은 “재협상이나 파기나 추가조치 요구는 위안부 문제를 한·일 간 외교 현안으로만 봤을 때 하는 이야기인데, 문 대통령은 이보다 확장된 보편적 인권 문제로 접근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저는 일본에게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지 않는다”며 “그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답게 진실한 반성과 화해 위에서 함께 미래로 나아가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이는 그간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비판하기 위해 썼던 ‘골포스트론’에 대한 반박 성격이 짙다. 일본은 “우리가 아무리 사과를 해도 한국은 새로운 기준을 들어 또 사과하라고 요구하며 유독 특별한 피해자 대우를 원한다. 골포스트를 옮기는 쪽은 한국”이라는 주장을 펼쳐 왔다.

이에 문 대통령은 한국에게만 위안부 문제를 사죄하라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 행위 자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성하라고 촉구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고통을 가한 이웃 나라들과 진정으로 화해하고 평화공존과 번영의 길을 함께 걸어가길 바란다”고도 말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위안부 문제를 한·일 간 문제로 한정짓지 않고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 전시 여성 성폭력이라는 더 큰 프레임을 설정한 것은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이 문제로 한·일 관계가 가로막히는 것은 곤란하다는 인식도 깔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해마다 돌아오는 한국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와 광복절 경축사는 한·일 관계의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을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3년 3·1절 기념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인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고 대일 강경 기조를 표명했고, 이후 한·일 관계는 갈등을 거듭했다.

문 대통령은 첫 3·1절 기념사에서 이처럼 공격적인 대일 메시지를 내놓지는 않았다. 분량도 적었고, 순서도 말미에 배치했다. 하지만 기념식을 서대문 형무소에서 진행한 것 자체가 메시지로서 갖는 성격이 있다. 일제의 잔학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서대문 형무소에서는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이 항복을 발표하기 몇 시간 전까지도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문 대통령의 일본의 독도 도발에 대해서도 기존 정부 입장을 다시 명확히 밝혔다. 문 대통령은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강점당한 우리 땅이며, 우리 고유의 영토”라며 “지금 일본이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일본 정부를 가해자로 칭한 문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해 “12·28 합의에서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합의에 반하는 것으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에 외교 루트를 통해 즉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의했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