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고이즈미' 후쿠다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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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마가키 고조(垣康三)'. 올 9월 물러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후임자를 예상하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면 거의 틀림없다.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 아소 다로(生太郞) 외상,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재무상과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관방장관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 만든 조어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아베 관방장관이 가장 유력한 상태다. 국민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데다 고이즈미 총리도 그를 관방장관에 발탁하는 등 후계자로 지목하고 있다는 신호를 여러 차례 보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후쿠다 대망론'이 급부상하면서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반(反)아베 세력이 후쿠다 의원을 옹립하는 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외교 노선을 둘러싼 대립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인해 경색된 한국.중국과의 관계를 푸는 데 후쿠다 의원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게 정.재계의 중론이다. 후쿠다 의원은 관방장관 시절 야스쿠니 신사 참배 논란이 일자 국립추도시설 건립 자문위원회를 발족해 보고서를 냈고 "총리의 참배는 위헌"이라고 발언했다. 그는 중국 고위층과 두터운 친분을 맺고 있다. 부친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일한협력위원회 이사장 대리를 맡고 있는 지한파이기도 하다. '야스쿠니 참배는 국가 지도자의 책무'란 인식이 있는 아베 장관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부분이다.

둘째는 자민당의 세대 간 대립이다. 올해 63세인 고이즈미 총리의 뒤를 이어 51세인 아베 관방장관에게 총리직이 넘어가면 급격한 세대교체가 불가피하다. 이에 대한 위기감을 가진 자민당 중진들이 최근 후쿠다 의원을 중심으로 뭉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해 69세인 후쿠다 의원의 나이가 단점이면서도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이와 관련, 아베 관방장관은 경험을 좀 더 쌓게 한 뒤 나중에 총리로 나서게 하자는 '아베 차차기론'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후쿠다 본인은 단 한 차례도 총리직 도전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 나머지 세 사람이 활발한 언론 접촉과 상호 견제를 하며 물밑 경쟁을 벌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오히려 "생각도 없는 사람에게 포스트 고이즈미 운운하는 것은 실례 아니냐"고 말할 정도다.

그런 가운데 지난주 한국을 방문한 그의 언행이 일본 정가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그는 16일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양국 관계는 상부(지도자) 레벨에서 혁명적인 진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을 중단 상태에 이르게 한 고이즈미 총리를 비판한 발언이었다. 자민당 중진 가타야마 도라노스케 의원은 "결과적으로 후쿠다 의원이 차기 도전의지를 비춘 것으로 돼버렸다"고 말했다.

최근엔 후쿠다 의원의 인기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아사히(朝日) 신문이 18일부터 이틀간 1849명에게 '차기 총리로 적합한 사람'을 묻는 설문 조사에선 응답자의 47%가 아베 장관을 꼽았다. 하지만 후쿠다 의원이 20%를 얻어 5% 이하에 그친 아소 외상 등을 크게 따돌렸다. 최근 몇 년간 아베 이외 정치인의 인기도가 20%에 이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본 총리직은 다수당인 자민당 총재 선거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국민적 인기가 직접적 변수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후쿠다 야스오는

-69세, 와세다대 경제학과 졸업

-6선 의원, 역대 최장수 관방장관(2000~2004년)

-가계=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의 장남

-주요 발언="총리로서 야스쿠니 참배는 헌법 위반" "한.일 관계는 상부(지도자 간) 관계가 혁명적으로 진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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