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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낡아도 건물 튼튼하면 재건축 못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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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재건축 시장의 대장주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4424가구)와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3930가구). 재건축 완공 후 내야 하는 재건축부담금(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을 피하지는 못해도 안전진단을 통과해 재건축 ‘도장’은 이미 받았다. 지난 20일 정부의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정상화’ 발표에 내심 안도한다.

2006년 안전진단 기준과 비교해 보니 #“2010년 은마·잠실5단지 안전진단 #‘조건부 재건축’ 판정 … 규제 완화 덕” #안전진단 강화로 재건축 어려워져

하지만 이들 단지도 안전진단 아픔을 겪었다. 둘 다 안전진단을 한 번에 통과하지 못했다. 은마아파트는 2002년 첫 탈락 후 2010년 통과까지 8년을 보냈다. 잠실주공5단지는 2006년 예비안전진단(현 현지조사) 문턱을 넘지 못했다가 4년 뒤 재건축 대상으로 확정됐다. 1979년에 지어진 은마아파트는 31년 만에, 은마아파트보다 1년 전에 준공된 잠실 주공5단지는 32년 만에 재건축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이들 단지의 안전진단 통과는 2009년 이명박 정부의 안전진단 기준 완화 덕이 컸다. 안전진단 평가 항목 중 당시 비중이 가장 컸던 ‘구조 안전성’이 50%에서 40%로 낮아졌고 ‘주거환경’과 ‘비용 편익(경제성)’이 각각 10%에서 15%로 높아졌다.

이번에 바뀌는 기준에서는 구조 안전성 50%, 주거환경 15%, 비용 편익 10%다. 2010년보다 까다롭다. 새 안전진단 기준은 노무현 정부 때와 비슷하게 까다롭다.

안전진단 평가항목별 중요도

안전진단 평가항목별 중요도

노무현 정부는 연초부터 집값이 급등하던 2006년 3월 30일 ‘재건축제도 합리화’를 명분으로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했다. 당시 정부는 안전진단 실시 여부를 결정하는 예비평가(현 현지조사)를 시설안전기술공단·건설기술연구원 등에 맡겼다. 안전진단 결과에 대해 정부가 재검토 요청을 할 수 있다. 안전진단 판정에서 구조 안전성의 비중을 높였다. 45%에서 50%로 올리고 비용 편익을 15%에서 10%로 낮췄다.

지난 20일 발표된 새 기준은 노무현 정부 때 안전진단 기준의 업그레이드판이다. 현지조사에 전문성 있는 공공기관을 참여시키고, ‘조건부 재건축’ 판정의 적정성을 검토한다. 20%까지 떨어진 구조 안전성 가중치를 50%로 높인다. 층간소음만으로도 재건축할 수 있을 정도로 비중을 높인 주거환경 가중치(40%)는 15%로 낮춘다.

2006년 안전진단 조건 강화 후 안전진단 통과는 어려웠다. 2006년 8월 이후 전국에서 신청한 7개 아파트가 모두 예비평가를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2010년 은마아파트와 잠실주공5단지 때부터 안전진단 통과의 봇물이 터졌다. 송파구청에 따르면 2006년 이후 최근까지 안전진단을 통과한 14곳의 통과 시기가 모두 2010년 이후였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번 안전진단 강화는 재건축 진입로를 봉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효과가 강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건설사 재건축 담당 임원은 “30년 재건축 허용 연한을 갓 넘긴 단지들은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통과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려 재건축 허용 연한이 40년으로 늘어나는 셈”이라고 말했다.

안전진단 통과에 틈새가 없지는 않다. 구조 안전성 기준은 2006년과 같지만 다른 평가항목은 2006년보다 다소 느슨하기 때문이다. 주거환경 가중치가 2006년보다 5%포인트 높다. 주거환경 평가 범위도 2006년 5개에서 9개로 늘어났다. 종전에는 ▶도시미관 ▶소방활동 용이성 ▶침수 피해 가능성 ▶가구당 주차대수 ▶일조 환경만 평가했다. 여기다 사생활 침해, 에너지 효율성, 노약자와 어린이 생활환경, 실내 생활공간의 적정성 4개가 추가됐다.

구조 안전성이 좋은 평가를 받더라도 주거환경이 평가 5단계(A~E)에서 가장 나쁜 E(20점 이하)를 받으면 다른 항목의 점수에 상관없이 재건축할 수 있다. 2006년엔 구조 안전성이 20점 이하면 무조건 재건축을 할 수 있었다.

구조 안전성 평가는 기울기, 침하, 내하력(하중을 견딜 수 있는 능력), 내구성을 대상으로 한다. 2006년 이후 변화가 없다.

박원갑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그동안은 초고층이 재건축 시장의 화두였는데 앞으로는 안전진단 통과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됐다”고 말했다.

안장원·성지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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