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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얼 잇자"…일에 「백제마을」|구주 궁기현 난고촌서 "복고" 운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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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본에 「백제의 마을」이 탄생했다. 마을 입구와 면사무소·역·공원 등에 「여기는 백제마을」이라는 간판이 걸리고 옛 백제의 선조들이 물려준 유물을 전시할 백제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규슈(구주)에 있는 궁기현 동일저군남향(난고)촌에서 지금까지 옛 한국에 관해 「감추어진 역사」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과감히 공개하고 스스로 백제인의 마을임을 선언했다.
남향촌(우리 나라의 면에 해당)은 면사무소와 면의회·면교육위원회가 일제히 올 봄부터 이 마을을 「백제 마을」로 꾸미는 개혁적인 운동을 시작했다. 마을의 정신적 활력을 역사에서 찾자는 문예부흥 운동이다.
이 마을의 「다와라」(전원정인) 촌장(면장)은 『1천3백년 전에 백제의 왕족들이 바다를 건너 이곳에 와 정착, 마을을 융성케 했음을 이제 감출 필요가 없다. 우리들은 그들이 남긴 문화재와 풍습을 한껏 자랑할 것이며 이 마을의 개성적인 문화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남향은 구주의 미야자키(궁기)현에 있는 휴가(일향)시에서 자동차로 50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 면사무소가 발행한 자료에 따르면 이 마을은 서기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패망한 백제의 옛 왕 정가왕이 많은 왕족과 무관·궁녀들을 데리고 현해탄을 건너 남향까지 이동, 이곳을 다스렸으며 그들이 가져온 불교문화·건축기술·천문학·의학·농업 등 선진기술로 주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현재 이 마을에 있는 신문신사는 정가왕의 치적을 기리며 영혼을 모시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남향은 지난 30년 동안의 짧은 세월에 몹시 피폐해졌다. 옛 문화가 발전되기는커녕 오히려 감추어졌으며 산업시설조차 없어 인구가 3분의 1(현재 3천2백명)로 줄어들었다.
2년 전부터 마을 유지들이 자자손손 자랑할만한 향토를 재건하기 위해 「백제마을 만들기」 운동을 제창했으며 올 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마을의 곳곳에 「여기는 백제마을」이라는 팻말이 걸렸으며 촌장 및 의회의원들이 한국의 부여를 방문해 「백제마을」을 탄생시키기 위한 연구 조사에 착수했다. 「백제를 말한다」는 심포지엄도 개최했다. 이제는 주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국민학교와 중학교에서는 「가정교육학급」을 설치하고 가정주부들을 위한 부인회 강좌도 계획하고 있다.
「도야마」(도산의인) 교육장은 『백제마을 만들기 운동의 중핵으로 기초가 되는 것은 사람됨됨·마음됨됨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를 위한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가 한국어교육의 실시』라고 설명했다.
남향이 컨설턴트 전문회사의 자문을 거쳐 만든 21세기 개발구상에 따르면 백제인들이 남긴 국보급 문화재(33면의 구리거울과 수혜기(토기의 일종) 마령(말방울) 마탁(말방울)을 전시할 백제관 건립, 백제의 풍습을 기리는 축제 등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해 지역 이미지를 확립한다는 것이다.
역시 「백제 마을」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남향촌의 「가네마루」(금구긍) 의회의장은 『백제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문화재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백제의 꽃으로 불리는 인동덩굴을 약초 또는 술로 개발하고 자라요리·김치 등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향을 직접 답사한 재일 소설가 김달수씨는 『일본인이 자기가 사는 지역을 백제의 마을이라고 부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매우 놀랄만한 사실이다. 일본에 백제신사·백제천 등이 있긴 하나 자기가 사는 마을을 옛 백제인들이 다스린 곳이라고 자랑하는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경=최철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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