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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 내부 고발’ 오동식, 그도 폭언·폭행 가해자였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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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식 페이스북 캡처]

[오동식 페이스북 캡처]

배우이자 연출가 오동식이 이윤택 연극연출가의 기자회견이 모두 연출된 것이었다고 내부고발한 가운데 이번에는 오 연출가의 과거 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21일 오 연출가는 자신의 SNS를 통해 "나는 나의 스승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선배를 공격하고 동료를 배신하고 후배들에게 등을 돌립니다. 나는 XXX입니다"라는 글을 올려 이 연출가의 행태를 폭로했다.

오 연출가의 폭로로 이날 오후 연극계는 다시 한번 발칵 뒤집었다. 하지만 폭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오 연출가가 폭언·폭행의 가해자로 지목됐다.

이날 오 연출가의 폭로 글이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원선혜 조연출 등 연극계 후배들은 과거 그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원선혜 조연출은 이날 SNS를 통해 "연극계에 너무나도 만연한 폭력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며 2017년 상반기 국립극단 디아스포라 전의 한 작품에서 영상 오퍼를 맡았을 때 겪었던 오 연출가의 행태를 공개했다.

원 조연출은 "당시 전날만 해도 멀쩡하던 프로젝터에 문제가 생겼다. 이 상황을 무대 감독에게 전달하고 함께 해결하는 중이었다. 그때, 연출이 와서 '왜 안 되냐'고 물었고, 저는 '모르겠다. 지금 확인 중이다'라고 답했다. 이후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또 같은 질문을 하는 연출에게 같은 답을 반복하자, 연출이 화가 났는지 갑자기 저를 불러 욕설을 내뱉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순간 'XX년'은 제 이름이 됐고, '왜 쳐다보냐', '사람 대우해주니까 내가 만만하냐'는 식의 영상과 상관없는 폭언을 들었다. 연출은 더 화가 났는지 급기야 주목으로 제 명치를 밀치며 몰아세웠고, 무대 감독과 무대 크루가 말리자 발길질을 했다"고 적었다.

원 조연출은 이후 피해자임에도 주홍글씨가 낙인찍힐까 봐 무서워 당시 아무 말도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글을 준비하던 도중, 저에게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가 본인 극단을 내부 고발하는 글을 올렸다. 사실 이 글을 준비하면서도, 이후가 두려워 올릴까 말까 망설였지만, 가해자의 해당 글을 읽고 올려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며 글 속의 폭행 가해자가 오동식 연출가임을 밝혔다.

원선혜 조연출 등 피해자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오 연출가는 SNS를 통해 "저는 방조자이고 가해자이고 공모자다. 원선혜 씨 사건은 사실이다. 사과한다. 원선혜의 작업에 익숙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그 부분을 폭언과 폭행적인 행동으로 보여준 것은 제 잘못이다"라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원선혜 조연출 SNS 원문

안녕하세요. 제게 있었던 일이 #Metoo 운동에 얼마나 힘이 될지, 또한 적합한지 잘 모르겠지만, 연극계에 너무나도 만연한 폭력에 대해 얘기하려 합니다. 아마도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들 또한 이것이 폭력인지 모르는 환경 속에서 자라왔을지도 모릅니다. 저 또한 그 속에서 이것이 폭력인지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2017년 상반기 국립극단 디아스포라전의 한 작품에 조연출로 참여했습니다. 사건은 공연 첫날이었습니다. 공연에서 저는 영상오퍼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전날만 해도 멀쩡하던 프로젝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를 발견했을 당시 그 문제가 어떻게, 왜 발생한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룻밤 자고 온 사이에 기계가 갑자기 말을 안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상황을 무대감독에게 전달하고 함께 해결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때, 연출이 와서 ‘왜 영상이 안 되냐’고 물었고, 저는 ‘모르겠다. 지금 확인하는 중이다’라고 답했습니다. 연출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또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까지 영상감독님을 비롯한 다른 감독님들의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저는 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답을 반복하자, 연출이 화가 났는지 갑자기 저를 불러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XX년’은 저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왜 그 따위로 쳐다보냐’, ‘사람 대우해주니까 내가 만만하냐’는 식의, 영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폭언을 들었습니다.

‘눈을 깔라’, ‘왜 쳐다보냐’, ‘대답하지 말라’는 말들을 들었고, 그러면서 저와 연출의 거리는 상당히 가까워져 있었습니다. 연출은 더 화가 났는지 급기야 주먹으로 제 명치를 밀치며 몰아세웠습니다. 무대감독과 무대 크루가 말리자 발길질을 했습니다. 무대 크루가 그를 뒤에서 붙잡고 있었고, 무대감독이 제 앞을 막아주었기 때문에 제가 발길질에 맞지는 않았습니다.

이 상황을 들은 피디가 극장으로 왔을 때, 연출은 ‘저딴 싸가지 없는 년이랑은 작업 못하겠다’며 ‘극장 밖으로 내보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나가라고 XX년아’를 계속 들었습니다. 제가 나가지 않는 이상 해결이 될 것 같지 않아 가방을 들고나갔고, 그 후 피디가 사무실 한편에 자리를 내어주어 그곳에서 대기했습니다. 그리고 피디와 제작팀장이 돌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출이 화가 많이 났으니 일단 사과하라.’

그때 제 머릿속은 물음표 하나로 가득 찼습니다. ‘피해자는 나인데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대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돌아온 답은 ‘연출이 화가 많이 났으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네가 사과하면 진정할 것’이란 말이었습니다.
그날 어떻게든 공연을 올려야 했고, 극장을 들어가는 순간 숨이 턱 막혔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공간이 이렇게 숨 막히는 곳인지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극장 문을 열어야 하는데, 무서웠습니다.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연출과 둘이 있게 되면 난 어떡하지?’라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 뒤로 혼자 극장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공연 내내 누군가와 함께 다녀야만 했습니다.

사건이 있은 뒤, 국립극단에서는 저에게 ‘원하는 것이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나 저는 ‘원하는 것’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무섭게 들렸습니다. 이 사건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고,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건데, ‘원하는 것’을 말하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반문했습니다. ‘제게 원하는 게 있으세요?’ 그러자 피디는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무대감독이 여자이고 나이가 어려 이런 사건이 생기게 된 것’이라며 당시 저와 나이가 비슷한 여성 무대감독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질책했고, 폭력의 가해자가 아닌 사건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이 미성숙했다는 식의 분위기로 옮아갔습니다.

그리고 공연의 첫 주가 흐르고 공개 사과가 있었습니다. 저는 피디로부터 ‘연출의 사과가 있을 것이다’라고 전달받았습니다. 당연히 저에게 직접 하는 사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배우와 상주 스태프들을 모아둔 자리에서 ‘공연 중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모두에게 미안하다’, ‘고마운 게 많아서 조연출로 불렀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말들로 본인을 포장하는 사과 아닌 사과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 순간 이렇게 사건이 해결하는 것이 과연 맞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당시 저는 함께 만들어 온 공연을 잘 올리고 마무리 짓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들이 당시 이러한 폭력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가 ‘연출에게 불편함을 드렸다면 죄송하다’라고 사과하면서 이 사건은 일단락되었습니다.

저는 무서웠습니다. 저에게 어떠한 주홍글씨가 낙인찍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출이 소속해있는 집단이 괴롭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사건 다음날 아침, 연출과 같은 극단 소속이자 저희 팀의 조명 디자이너로 참여했던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네가 잘못했으니 사과해라, 사과 안 하면 어떻게 될 줄 아냐, 연극계에서 매장당하는 거 한 순간이다’라고 말했고, 심지어는 ‘선생님이 곧 문화부장관이 될지도 모른다’라며 자신들이 스승으로 모시던 소속 극단의 연출가를 거론하는 협박도 들었습니다.

피해자가 왜 떳떳하지 못해야 하는지, 왜 내가 협박전화를 받아야하는지. 그리고 ‘나’라는 한 사람이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했으면 저렇게 말을 하는지, 여러 고민들과 이 사건을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막연히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시간이 흐르고 말았습니다. 누군가에게 말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에게 피해를 끼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또한 저로 인해 상처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폭력과 폭언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 제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준비하던 도중, 저에게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가 본인 극단을 내부 고발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사실 이 글을 준비하면서도, 이후가 두려워 올릴까 말까 망설였지만, 가해자의 해당 글을 읽고 올려야겠다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아직도 연극계에서 이러한 환경이 당연시되어 자신이 피해자인지 모르고 있을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어떠한 폭력과 폭언도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 글이 현재 연극계의 Metoo와 Withyou 운동에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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