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국일제지 최우식 사장 스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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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42기, 소령 예편, 제지회사 기획실장과 사장.

신호제지 인수로 화제를 모은 최우식(42.사진) 국일제지 사장은 경영자로선 이력이 특이한 편이다. 그는 따로 경영학을 공부하지 못했다. 흔한 경영대학원(MBA)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 회사원이 된 것도 33세 때로 늦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못 돼 지난 20일 매출액이 15배나 많은 제지회사를 인수했다. 국내에선 성공이 드문 적대적 인수합병(M&A) 사례였다. 업계에선'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 말엔 놀라움과 함께 의구심이 섞여 있다. '인수는 했지만 경험 부족으로 큰 회사를 제대로 운영하겠느냐"는 우려다.

최 사장은 이에 대해 "군대에서 사실상 MBA를 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육사 졸업 후 맹호부대와 수도방위사령부 소대장으로 근무했다. 대위 땐 미 텍사스 육군군사학교에 1년간 유학해 고등군사과정을 공부했다. 자신감과 리더십이 이때 길러졌다. 귀국 후 발령받은 보병학교는 경영자의 자질을 배우는 계기가 됐다. "연구 장교로 발령받아 군대의 구조와 무기체계.지휘.통제.통신.전산.정보체계(C4I) 같은 걸 공부하다 보니 조직과 인사 관리, 정보기술(IT)에 눈뜨게 되더라고요."

그는 1997년 장군이 되겠다는 꿈을 접고 국일제지에 입사했다. 회사를 맡아달라는 아버지 최영철(74.송담대 이사장) 회장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형인 최성식(43.송담대 부학장) 교수는 일찌감치 학문의 길을 선택해 차남인 그가 회사를 도와야 하는 처지였다. 기획실장 직함을 받은 뒤 관심 밖이던 제지업을 익히려고 바삐 움직였다. 송담대 제지학과 교수들에게 반년간 강도 높은 과외공부를 했다. 직접 차를 몰고 전국의 제지공장을 견학했다.

곧이어 닥친 외환위기는 그에게 오히려 기회였다. 경쟁사들이 자금 사정 악화로 퇴출 위기에 몰린 사이에 국일제지는 강판 보호용 간지 등을 포스코와 담배인삼공사에 새로 납품해 몸집을 불려나갔다. 외환위기 전 150억원가량이던 연매출이 2000년 380억원으로 늘었다. 2002년엔 중국 장쑤(江蘇)성에 연산 2만5000t의 가구용 인쇄용지 및 강판 간지 생산공장을 세웠다. 최 사장은 "중국의 특수지 시장은 한국의 20배 규모"라며"국내 매출이 주춤한 데 비해 중국 공장은 지난해 200억원 매출을 올렸다"고 말했다.

이렇게 다진 내실과 자신감으로 그는 지난해 신호제지 인수에 나섰다. "인생 행로를 제지업으로 바꾼 이상 '제지 박사'소리를 들을 만큼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욕심에서였다. 신호제지 경영진의 반발이 거셌지만 주요 주주들과 채권은행(신한은행)을 차근차근 설득했다. 신문광고전 같은 어려운 고비를 맞을 때면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대망'의 구절 '풍림화산(風林火山)'을 떠올렸다. 움직이지 않을 때는 산처럼, 움직일 때는 바람처럼, 결정할 때는 불처럼, 단결할 때는 나무처럼 한다는 뜻이다.

그는 "3시간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신호제지 노동조합이 찬성으로 돌아섰고, 생각지도 않았던 채권은행도 우리를 도왔다"고 말했다.

그는 당분간 국일제지와 신호제지를 분리 경영할 생각이다. "합병은 두 회사 임직원의 마음이 하나로 합쳐질 때에나 고려할 일"이라는 설명이다.

나현철.최준호 기자<tigerace@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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