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세 나이에 철강 업계의 대부로|후광업고 땅 짚고 헤엄치기 경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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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때 철강업계의 「대부」소리를 들었던 이창석씨가 제5공화국 권력의 퇴장과 함께 그동안 벌여온 「재벌놀음」을 마감하게 됐다.
제5공화국의 출범직전 동양철관의 말단과장이었던 그는 매부인 전두환 전대통령의 집권과 함께 어느 날 갑자기 철강업계의 만만치 않은 실력자로 부상했다.
83년초 32세의 나이로 동양철관 부사장으로 취임했고 같은 해 7월 철강업체인 (주)동일 을 창업, 막강한 젊은 실업가로 탈바꿈했다.
이어 84년에는 운수회사인 동일통상(주)을 설립했고 85년 초에는 수출입 오퍼상인 동일 인터내셔날과 소프트웨어 전문업체인 동일 데이터시스템(주)을 창업했다.
지난 70년대의 율산·제세와 같은 「무서운 아이」를 연상시키는 그의 부상은 그러나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치권력과 밀접한 함수관계를 갖고있었다는 점에서 출발부터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의 사업은 「땅 짚고 헤엄치는 것」보다 더 쉬웠다.
동양철관 재직시절 대통령 처남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이 회사의 이익이 나는 사업을 따내는데 다대한 기여를 했고 이 때문에 경영인으로 대성할 수 있다는 본인의 「확신」과 주변의 유혹이 (주)동일의 창업으로 발전했다.
(주)동일은 포항제철에서 원자재를 공급받아 장관을 생산, 광양제철소 건설용으로 독점 납품했다. 원자재의 안정적 확보와 탄탄한 판로는 이 회사의 85년 당기순익을 17억원으로 높여놓았다.
이씨가 엄청난 특혜를 누리는데 대한 여론이 높아지자 86년말 이씨는 (주)동일을 포철에 매각키로 했다.
당초 (주)동일의 지분은 포철장학회와 동양철관이 각각 45%를 갖고 있었고 이씨는 45%에 불과했다.
그러나 매각당시 이씨는 동양철관의 지분을 액면가대로 사들인 다음 포철에는 싯가대로 팔았다.
포철에서는 44억원의 감정평가액보다 싼 가격인 42억8천만원에 사들였다고 밝히고 있지만 액면가 11억3천만원과의 차액을 이씨가 챙겼다는 사실은 엄연한 것.
이씨는 여기서 생긴 차액등으로 86년11월 창원강업을 설립했다. 이 회사 역시 (주)동일 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원자재를 포철에서 공급받아 냉간압조용선재(CHQ)를 생산, 자동차용볼트·너트 생산업체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이씨는 새마을 비리사건이 큰 물의를 빚고 있을 때도 자신은 「이권에 별로 개입하지 않은 깨끗한 사람으로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 시설투자를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산업은행이 73억원의 시설투자 자금이외에 별도의 운전자금 대출을 거부하고 제일은행·상업은행등 거래은행이 여신을 거절하자 「세상이 바뀌었음」을 실감했다는 것.
결국 이씨는 자신을 「능력있는 경영자」로 착각, 그동안 성장의 핵심요인이었던 정치권력의 부침에 대해 지나치게 무심했던 「순진한 사람」인 것 같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최근 일부언론의 매도에 대해 『신호등 설치등 내가 하지 않은 일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면서 측근들에게 하소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그는 그동안 설립했던 모든 회사를 매각하고 강남구 역삼동의 5층짜리 창원빌딩과 제주도에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우·한종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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