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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점포서 2억 훔친 20대 "잡아줘 고맙다" 감사편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모(27)씨가 무인인형뽑기방의 지폐교환기를 털고 있다. [사진 경북경찰청]

김모(27)씨가 무인인형뽑기방의 지폐교환기를 털고 있다. [사진 경북경찰청]

지난달 28일 새벽 2시14분 경남 진주혁신도시의 한 무인 인형뽑기방. 키 185㎝·몸무게 100㎏의 남성이 한 손에 드라이버를 들고 지폐교환기 앞에 섰다. 주변에 인적은 없었다. 남성이 드라이버를 지폐교환기에 넣어 돌리자 곧바로 문이 열렸다. 안에 현금은 없었다. 3분 뒤 이 남성이 빈손으로 도망가려 하는 찰나 잠복해 있던 경찰 2명이 그를 잡았다. 사람이 적은 새벽 시간대 전국 혁신도시의 무인점포를 돌며 4년간 2억원을 훔친 김모(27)씨다.

경북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34차례에 걸쳐 현금 2억원을 훔친 절도범 김씨를 12일 검거해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대전에서 택배기사로 일하던 2014년 택배 물품인 휴대폰을 훔친 뒤 잠복했다. 이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전국을 돌며 일주일 단위로 범행을 저질렀다. 무인점포 내 폐쇄회로TV(CCTV)가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전국을 돌며 무인점포에서 현금 2억원을 훔친 김모(27)씨. 주로 지폐교환기를 털었다. [사진 경북경찰청]

전국을 돌며 무인점포에서 현금 2억원을 훔친 김모(27)씨. 주로 지폐교환기를 털었다. [사진 경북경찰청]

경찰은 CCTV를 통해 김씨의 신원은 파악했지만 검거에는 100일이 걸렸다. 가족과 연락이 두절됐고 핸드폰을 쓰지 않았으며 택시·기차만 타고 다녀서 행방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범행 후 모텔에서 일주일간 잠복하고, 다음 범행은 50~100㎞ 떨어진 지역에서 했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전담반을 꾸려 김씨의 범행 패턴을 분석했다. 경남 진주·부산 기장면·경북 포항·경북 김천혁신도시 등 4개 곳을 선정해 지난달 28일 새벽 잠복했다. 결국 경남 진주혁신도시의 한 인형 뽑기 방에서 범행 후 나온 김씨를 검거했다.

장찬익 경북경찰청 광역수사대장은 "전국적으로 무인점포를 대상으로한 범죄가 성행하고 있다"며 "드라이버만으로 금고나 지폐교환기를 열 수 있어 10·20대 범죄의 타깃이 되고 있는 만큼 보안을 강화하는 등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국을 돌며 무인점포에서 현금 2억원을 훔친 김모(27)씨. 주로 지폐교환기를 털었다. [사진 경북경찰청]

전국을 돌며 무인점포에서 현금 2억원을 훔친 김모(27)씨. 주로 지폐교환기를 털었다. [사진 경북경찰청]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전국 인형 뽑기 방 수는 1705개다. 대부분 무인으로 운영된다. 무인 빨래방, 무인 코인노래방도 급격히 느는 추세다. 직원이 상주하고 있지 않는 대신 지폐 교환기가 설치돼 있다.

서울 서부경찰서는 지난달 21일 서대문구의 한 인형뽑기방 지폐교환기에서 현금 350만원을 훔친 이모(18)군 등 4명을 특수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지난해 5월에는 청주와 인천, 대전 등의 무인 인형뽑기방에서 10대 4명이 2주 만에 3000만원의 현금을 훔치다 잡혔다. 10대들은 훔친 돈을 주로 술과 담배를 사는 데 썼다.

김씨의 경우 별 생각 없이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는 "그저 잡히지 않으니까 막연히 범행을 계속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구속 후에는 경북경찰청 광역수사대 형사들에게 자필로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김씨는 "저를 잡은 형사님들께 감사하다. 체포돼서 가족과 다시 볼 수 있고 죗값을 치른 후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저로 인해 피해 받으신 분들께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국을 돌며 무인점포에서 현금 2억원을 훔친 김모(27)씨가 경북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쓴 편지. [사진 경북경찰청]

전국을 돌며 무인점포에서 현금 2억원을 훔친 김모(27)씨가 경북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쓴 편지. [사진 경북경찰청]

경찰은 지폐교환기의 기계적 결함과 보안이 허술한 무인점포의 새벽 시간대를 노린 범죄사례에 대해 관련 업체에 알릴 방침이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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