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불안·피곤하게 안해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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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치는 고도의 종합예술이므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거나 피곤하게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따라서 여당에 협력할건 하고 견제할건 분명히 해나갈 생각입니다.』
4.26총선거로 졸지에 제2야당으로 떨어져 위상정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 민주당의 김영삼전총재는 생각보다는 훨씬 평정한 상태에서 시시비비 노선의 확립을 강조했다.
상도동의 비교적 낡은 양옥의 2층 사랑방에서 손수 차를 따르면서 2시간여동안 회견에 응한 김전총재는 과거의 정치가 각박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누누이 설명하고 『이제는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중지를 모아 서서히 해나가는 정치를 해야합니다』고 「여유의 정치」「조화와 협력의 정치」를 역설했다.
그는 『국민이 이번 선거를 통해 독주보다는 견제를 택했으므로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은 여당과 동등한 책임감을 갖고 국가장래를 염려해 안정과 견제를 조화시켜나가야 합니다』고 말해 의회주의자라는 그의 평판을 다시 드러내 보였다.
-득표율에서 앞섰으나 의석수에서 평민당에 밀린 총선거결과에 실망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당이 여러 어려운 상황에서 선전했다고 봅니다만 김명윤총재대행등 근소한 차로 2등한 사람이 많아 마음이 아픕니다.
국민들로부터 고르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는 점에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으나 그것을 의석과 연결 못시켜 국민에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민주당이 대통령선거패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왕좌왕 하다가 결국 「무전략」상태에서 총선에 임해 패했다는 시각도 있던데요.
『대통령선거의 패배충격이 당으로서도, 내 개인으로서도 너무 컸고 또 내가 지역구에 나간 부담도 있고…. 아무튼 효과적 대처를 못한 건 솔직히 시인합니다.』
-대통령선거후 김전총재는 당체질 개선을 외쳤으나 공천결과를 보면 오히려 사당화됐다는 비판도 없지 않던데….
『공천이 잘 됐다고는 할 수 없으나 신진세력을 최대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영입한 유능한 대학교수들과 전문직업인들이 조직활동에 익숙치 못해 그것이 패인이 되어 서울에서 패배한건 가슴 아픈일이지요.』
-전국적으론 총선에서 고른 지지를 받았다하나 호남에선 전혀 먹혀들지 않았는데….
『지역감정문제는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이 만들어낸 불행한 유산인데 정치인들이 이것을 이용했고 이번 선거때도 이용했습니다.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노력을 정치지도자들이 앞장 서야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지역을 방문한다고 해소되는게 아닙니다.
두고두고 해결해야할 과제인데 국회와 당내에 특위같은걸 만들어 민주당이 그 해결방안을 강구토록 할 작정입니다.』
-평민당이 제1야당이 되고 공화당도 위치가 격상됐지만 민주당은 가장 어정정한 입장인 셈인데 앞으로 어떻게 자기위치를 정립할 구상입니까.
『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번 총선이 지역주의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같은 지역성 탈피를 위해서 각 야당은 야당으로서의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 어느 정당도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가 상대방을 무시해서는 무슨 일도 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충분히 협의해서 처리할 수 밖에 없는데 우선 3개 야당의 협력체제를 갖추는 게 필요하지요. 한당이 마음대로 끌고 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데서 운영의 묘가 요구되고….』
-잘못하다가 평민당에 질질 끌려가다 마는게 아니냐는 당내 우려도 있던데요. 공화당은 나름대로의 자기위치도 있지만 민주당만 뚜렷한 자기위치도 없이….
『민주당은 어디까지나 우리 입장을 견지해나갈 것이지만 공통의 이해에 관한 안건에는 서로 협력해야지요.
과거와 달리 3개 야당은 협력과 공존의 터전을 마련해갈 것입니다.』
-「소수여당-거대야세」구도 하에서 야당의 자세도 뭔가 달라져야한다는 여론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쨌든 민주당에 다수의 지지가 있었으므로 응분의 책임을 느껴야하지요. 국민이 시국을 불안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국민들은 독재보다는 견제를 선택한 것 아닙니까. 따라서 민주당은 「안정과 견제」를 조화롭게 펼쳐나갈 것입니다.
노정권이 정말 민주화로 가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우리의 협력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의 민주화와 장래를 여당이 걱정하는 것만큼 야당도 염려하고 있고 또 마땅히 해야지요.
그러나 과거처럼 공작적 차원에서 야권을 분열시키고 탄압하면 견제하고 싸울 수밖에 없지요.』(어조가 이 대목에서 단호해졌다. )
-야당간의 협력을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김대중씨와의 관계는 갈등과 앙금도 적지 않을 터인데 말입니다.
『김대중씨와는 오랫동안 반독재 투쟁을 같이 해온 만큼 생각이 다르다고 하기는 어렵겠지요.
평민당도, 민주당도 모두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니까…. 오랫동안 정치해온 입장에서 대국을 놓고 봐야지요.』
-이제 야권도 상당부분 정국에 책임을 져야하는 것 아닙니까.
『물론이지요. 국정에 야권도 상당부분 책임져야하므로 자연히 주도차원보다는 국민을 안심시켜가면서 정부·여당의 독주를 견제하는 운영의 묘를 기해야지요.』
-국회원구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무엇이든지 상식선에서 해결해야지요. 정치를 억지로 끌여 붙여서는 안되고….국회운영도 순리대로 하면 원만해질 것입니다.』
-광주사태해결과 5공화국 비리가 13대 국회에서 어떻게 처리돼야한다고 생각합니까.
『광주의거나 5공화국비리는 어디까지나 진실이 규명돼야 한다는 차원에서 반드시 새 국회에서 조사돼야 합니다.
그러나 보복적 차원에서는 안된다고 확신하고 이점에서는 3야당의 입장에 차이가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지요.
특히 광주의거는 진실이 규명된 후 국가가 정말 책임을 지고 피해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진실로 사죄한 후 그에 따른 물질적 보상도 후하게 해야할 것입니다.
5공화국 비리도 역사의 진실과 민족정기를 바르게 한다는 차원에서 반드시 가려져야 하며 이를 위해 민주당은 최대한 노력할 것이나 물리적 위해에는 동조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울러 대통령및 국회의원선거부정도 반드시 규명해 다시는 선거부정이 사회문제가 안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것이 우리 후대를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혹시 그런 과정에서 야당끼리의 선명논쟁으로 정국이 경화되고 불안정에 빠질 염려는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평민당·공화당이나 우리당이 모든 면에서 국가이익을 위해 협의하면 잘 될 것입니다. 4당이 책임을 공유하고 있는 만큼 성숙한 정치력을 발휘해야지요. 모든 문제는 야당끼리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는 게 좋을까 협의해야하며 이제 과거와 같은 세경쟁은 무의미하다고 봐요.』
-3김씨가 모두 국회에 복귀했고 김대중씨는 특히 자기변신을 신속히 하고 있다는 평이던데요.
『지역구출마 자체가 의회주의자로서 국민의 심판을 받는게 좋겠다, 또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생각에서였지요. 너무 조급하게 하지 않고 모든 일을 서서히 하나하나 착실하게 다져나가는 방향으로 임할 생각입니다.』 (그는 이 말을 회견도중 여러 차례 부연했다.>.
-지금까지 누차 중지를 모으겠다고 강조했는데 그게 잘 안됐다고 보십니까.
『예, 그게 부족했지요. 당내 민주화도 활성화시켜 앞으로는 국회의원공천도 상향식으로 하는등 체질개선을 과감히 해나가야지요.』
-말씀하시는걸 유추해보면 당총재로 복귀하실 의향인 것 같은데….
『후진양성과 체질개선·정책정당육성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뿐입니다,』 (확답은 끝내 피했다. )
-지금까지 야당의 정책 부재를 탈피하겠다는 말입니까.
『이제는 야당도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정당으로 탈바꿈해 구체적 입법활동을 통해 나라의 문제를 해결할 시점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다른 야당상을 국민에게 보여야지요. 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많은 참신하고 유능한 인사를 영입해 자금도 뒷방침해 꼭 수권정책정당으로 민주당을 새롭게 선보일 각오입니다.』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력할 구체적 방안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집권측이 올림픽을 정권·안보적 차원에서 이용해봤으나 앞으로는 그래서는 안되지요.
우리는 적극 협력할 생각입니다. 예컨대 현실적으로 볼 때 두 차례의 선거로 국민들도 지치고 물가문제도 있는 점등을 고려, 지방자치제실시를 올림픽이후로 늦추는데 동의합니다. 다만 올림픽이후 자치단체장 직선을 포함한 지자제의 전면실시를 관철할 생각입니다.』
-올림픽후 실시될 노정권의 신임투표에 한판 승부를 걸 생각입니까.
『노대통령이 공약을 준수하길 바랍니다.』
-그때 흔들어보겠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여유가 있습니다. 운신의 폭도 있고요. 뭐든지 급히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금방 정권잡을 것처럼 설칠 필요도 없고 조급하게 생각지도 않습니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고도의 예술이고 국민에게 너무 피곤함을 주어서도 안되고요.』
-야권통합을 다시 추진하겠습니까.
(한동안 창밖을 내다본 후) 『4당 체제의 정립이 기정사실화 된 만큼 국민에게 또 한번 경솔하게 실망을 안겨주어서는 안되고 우선 3야당간의 협력이 중요하지요.』

<인터뷰=이수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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