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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민섭의 변방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한국문단이 되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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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2년 전,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쓰고 대학에서 나오면서, 다른 대학원생이나 시간강사들이 ‘나도 지방시다’하고 고백해 주기를 바랐다. 그에 더해, ‘나는 대학병원 간호사다’, ‘나는 콜센터 상담원이다’, ‘나는 방송국 막내작가다’, 하는 사회 전반의 목소리로 확장되었으면 했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은 크지 않았다. 누군가는 “당신은 유별난 사람인 것 같네요”라거나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모두를 모욕하지 마세요”하고 반응했다. 지방시는 결국 개인의 슬픈 서사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그것이 한국 대학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드러냈다고 하는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조금은 외롭고 아쉬웠다.

변방에서 2/10

변방에서 2/10

최근 ‘미투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최영미 시인은 ‘괴물’이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그에 동참했다. “En선생 옆에 앉았다가/Me too/동생에게 빌린 실크 상의가 구겨졌다”는 이 시는 문단 선배 ‘En’을 향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En은 삼십 년 선배이고, 100권의 시집을 펴냈고, ‘노털상’ 후보로 때마다 거론되는 인물이다. 누구나 쉽게 모 시인을 떠올릴 수 있다. 그의 고백을 두고 어느 시인은 “내가 최영미 시인을 좀 아는데 성격이 별나요, 왜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선량한 문인들을 매도하는 걸까요”하는 내용의 글을 썼다. 나로서는 익숙한, 참 간편하고 비열한 방식의 폭력이다. 거기에 동조하는 몇몇 문인들의 모습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못하는 이들이 그 자리에 있는 이상, 거기에서는 제대로 된 문학이 피어날 수 없다. 우리가 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윤동주의 시집을 복간하고 곁에 두는 것은 그가 약자에 대한 사랑과 함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가진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강자를 사랑하며 자신이 아닌 이들을 부끄러워했던 이광수의 소설은 연구자들만이 읽을 뿐 이미 죽었다. 신경숙 표절 논란과 배용제 등 문단 성폭력 사건을 거치면서도 별다른 반성이 없던, 이미 ‘폐허’가 된 한국문단에, ‘나도’하고 말할 수 있는, 무엇보다도 부끄러움을 아는 새로운 젊은 작가들이 나타나 주기를 바란다. 더불어 ‘나도’하고 용기를 내는 모든 ‘미투’들을 응원한다. 몇 년 전에 ‘나는’하고 말했던 지방시로서, 한국문학연구자였던 김민섭으로서도 그렇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