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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성게알 스시 좋아했던 YS, 레드 와인과 함께 즐겼지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한국 온 에도마에 스시 명인 카토 류 

지난달 29일 일본의 스시 명인 카토 류가 호텔신라 더 파크뷰 스시 코너에서 400년 전부터 도쿄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에도마에 스시’를 선보이고 있다. [김상선 기자]

지난달 29일 일본의 스시 명인 카토 류가 호텔신라 더 파크뷰 스시 코너에서 400년 전부터 도쿄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에도마에 스시’를 선보이고 있다. [김상선 기자]

푸른 기가 돌도록 바짝 깎은 머리 위로 두른 하치마키(머리띠), 교토서 주문 제작했다는 보라색 조리복을 입고 가느다란 손으로 샤리(스시의 밥)와 사시미를 매만지는 모습이 긴 칼을 쓰는 일식 조리사라기보단 다소곳이 앉아 차를 내리는 비구니를 보는 듯하다. 지난달 29일 호텔신라 ‘더파크뷰’ 스시 코너에서 ‘에도마에’ 스시를 시연한 카토 류(49)씨에 대한 첫인상이다.

술 빨리 마시는 남성에겐 작게 #한국인엔 일본인보다 약간 크게 #손님 성향 고려 스시 크기 조절 #엄지·검지로 두세 번 돌려야 최적 #이런 기술, AI는 따라할 수 없죠

그는 400년 전통의 에도마에 스시 명인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도쿄)에 터를 잡은 후 지금까지 내려져 오는 일본 스시의 큰 줄기다. 당시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하루나 이틀 동안 숙성한 사시미를 썼다. 지금도 그렇다. 생선을 숙성하려면 선도가 생명이기 때문에 그는 신선한 횟감을 찾아 일본 최대의 수산시장인 츠키지 시장을 돌아다니는 것부터 일과를 시작한다. 이날 아침도 어김없이 서울 노량진시장을 찾았지만 “가게마다 같은 생선만 있어 아쉬웠다”고 했다.

카토씨는 스시를 내기 전 고객과의 교감이 우선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손님이 가게에 들어올 때부터 나갈 때까지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나이와 성별, 체격, 술의 양, 술을 마시는 속도 등에 따라 스시를 달리 내기 때문이다. 그는 “손님이 오면 스시를 얼마나 먹을지 짐작하고 샤리의 크기를 조절한다”고 했다.

그는 도쿄 신바시의 고급 초밥집 ‘스시 오가타’의 오너셰프다. 최근 일본을 찾는 한국인이 급증하면서 카토우의 스시야를 부러 찾아가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기억에 남는 한국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우니(성게 알) 스시를 아주 좋아하시더라. 또 스시에 레드 와인을 즐겨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20일부터 나흘 동안 호텔신라 더파크뷰에서 에도마에 스시를 선보인다.

스시를 내는 자세가 인상적이다.
“카운터 너머에 앉은 손님과 눈이 마주쳤을 때 상대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정면보다는 약간 비스듬한 각도가 좋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첫 스시야에 들어간 때부터 거울 앞에서 항상 연습했다. 또 사리를 짓는 손의 움직임은 아주 중요한데, 오른손 검지와 엄지를 포개 손가락을 한 개 반으로 만들어 두세 번만에 지어야 한다. 세 번 이상 돌리면 안 된다.”
스시를 낼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
“사람에 따라 스시를 먹는 양이나 속도가 다르다. 그래서 손님이 카운터에 앉으면 성별과 체격, 술을 마시는 속도, 술잔에 술을 붓는 양 등을 보고 스시의 크기를 조절한다. 젊은 사람에겐 좀 더 크게 서비스하고, 술을 빨리 마시는 남성에겐 보통의 여성 손님보다 더 작게 만드는 식이다. 한국 손님은 일본인보다 약간 크게 내는 편이다. 하지만 중간에 스시가 갑자기 커지거나 작아지면 안 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손님의 성향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스시용 쌀과 생선을 고를 때 기준은.
“니가타 현에서 나는 겐센마이(源泉米)라는 쌀로 밥을 짓는데, 식물성 퇴비만 쓰는 30여 농가와 계약해 공급받는다. 식물성 퇴비는 콩 비지나 찻잎에 미생물을 넣어 80℃에서 발효시킨 것으로 동물성과 달리 유해한 질소 성분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생선은 자연산만을 쓴다. 양식장에서 나온 생선은 아무래도 사료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새벽에 문을 여는 수산시장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재료가 다양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한국산 학꽁치나 아나고가 스시 재료로 인기지만 이날 시장엔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선 셰프라는 직업이 아이들의 장래 희망일 만큼 인기다. 일본도 그렇나.
“셰프가 등장하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라고 들었다. 일본에선 현역에서 은퇴할 만한 고령의 셰프들만 ‘요리의 철인(料理の鉄人)’ 등에 출연하는 정도다. ‘스타 셰프’란 말도 쓰지 않는다. 나도 TV 출연을 요청받은 적이 있지만,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그런 TV 프로그램과 나의 고객층이 맞지 않고, 나의 요리 철학과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 조리사가 꿈이었나.
"아이치현 시골 마을에서 에도시대 골동품을 수집해 파는 아버지 슬하에서 컸다. 마을에 중국 음식점이 하나 들어섰는데, 불 위에서 웍을 돌리는 주방장이 너무 부러웠다. 그 길로 조리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최고의 조리사가 되겠다는 것보다는 그날그날 스시 카운터를 찾는 손님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일한다. 또 스시는 숨이 찰 정도로 배불리 먹는 게 아니라 하나의 코스가 끝날 때까지 기분 좋게 먹는 게 좋다. 손님들이 그런 상태로 스시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게 나의 요리 철학이다.”
인공지능(AI)이 많은 직업을 대체할 것이라고 하는데, 스시 셰프는 어떨까.
"AI는 내 기술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생선에 기름기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보고 숙성 시간을 결정하는 것, 손님의 성향에 따라 스시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 등은 AI가 할 수 없는 기술들이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S BOX] 에도마에 스시는 생선·어패류 숙성시켜 만들어

에도마에(江戸前)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에도 앞’이라는 뜻이다. 에도 앞바다(현 도쿄만)는 천혜의 간석지가 펼쳐진 기름진 어장으로 지역 어부들은 먼바다에 나가지 않고도 신선한 생선과 어패류 등 횟감을 건질 수 있었다. 당시엔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에 생선을 숙성하거나 보관하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발달했다. 생선의 종류에 따라 소금 절임, 다시마 절임 등의 절임법이 있으며 이는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에도마에 스시에는 일반적인 초밥 외에도 지라시 스시, 김밥 등이 있다. 지라시 스시는 잘게 썬 생선과 달걀부침·오이·채소를 초밥에 섞은 후 그 위에 고명을 얹은 것이다. 애초 에도마에 스시는 한입에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컸지만, 점차 작아졌다고 한다. 최근 일본의 고급 스시야(스시 가게)에선 숙성한 에도마에 스시 외에도 숙성하지 않은 활어를 이용한 ‘프레쉬(Fresh) 스시’를 함께 내기도 한다.

최근 회전식 초밥점이 증가하면서 생선 외에도 채소나 아보카도 등 색다른 재료를 활용한 스시도 인기다. 스시의 대중화를 위해선 재료의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통 에도마에 스시를 고집하는 고급 스시야에선 절대 민물고기나 채소 등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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