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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실학자 이덕무의 보물 같은 문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문장의 온도

문장의 온도

문장의 온도
이덕무 지음
한정주 옮김, 다산초당

종이와 잉크로 이뤄졌을 뿐인 문장의 힘이 세다는 방증은 예로부터 숱하다. 플라톤이 공동체에서 시인을 추방하고자 했던 것도 그들이 퍼뜨릴 말, 문장이 두려워서였다. 조선 정조가 밀어붙인 문체반정(文體反正)도 마찬가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며 박지원 등 당시 개혁파(북학파)가 사용하던 한문 문체인 소품문(小品文)을 금기시했다. 이 책의 원저자 이덕무(1741~1793)는 개혁파의 한 사람이었지만 대표선수들에 가려, ‘청장관전서’의 저자 정도로만 교과서에서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 위인을 그가 남긴 빼어난 문장을 가려 뽑아 복권시키고자 한 게 이 책이다. 청장관전서 가운데 『이목구심서』, 『선귤당농소』에서 뽑은 문장들이라고 한다. 당연히 소품문체로 쓰인 문장을 이덕무 ‘덕후’인 한정주씨가 한글로 옮겼는데, 한문 해독능력이 없어도, 사생(寫生)과 수상(隨想)에 주력한 짧은 문장이라는, 소품문 특유의 맛을 알 수 있게 돼 있다. 한글 번역만으로도 그런 게 느껴진다.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의 페이지를 접어 표시하다 보니 책이 지저분해졌다. 이런 문장에 눈길이 갔다.

“나쁜 소문은 몇 배가 되어 퍼져 나간다. 그러나 좋은 소문은 반으로 줄어들어 잊힌다. 이것은 양(陽)은 짝이 맞지 않는 홀수이고, 음(陰)은 짝이 맞는 짝수이기 때문이다. 군자는 반대로 힘써야 한다.”

잘 나가다 아리송해지는 문장이다. 뭔가 있는 것 같다.

“형상 밖의 아득하고 어렴풋한 것과 가슴속에 쌓인 기운을 마음으로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말과 글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다시 읽어보니 평범한 문장인데 처음 읽었을 때는, 옳거니, 공감했다.

천하의 문장도 글이 품은 저자의 마음과 읽는 이의 마음이 서로 맞아야 감동적으로 읽힌다. 그럴 때 문장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일 게다. 모든 발췌문마다 이덕무의 한문 원문과 옮긴이의 해설을 붙였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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