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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 '금수저 전형' 학종 , 학생부 간소화로 해결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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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광주의 한 사립고에서 한 교사가 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229회 접속해 1학년 성적 우수 학생 10명의 학생부 내용을 조작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육부가 전국 고교 학생부를 전수조사하고 학생부 기재 개선방안을 내놨다. [중앙포토]

2016년 광주의 한 사립고에서 한 교사가 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229회 접속해 1학년 성적 우수 학생 10명의 학생부 내용을 조작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육부가 전국 고교 학생부를 전수조사하고 학생부 기재 개선방안을 내놨다. [중앙포토]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서류에 학생의 힘이 아니라 소위 ‘돈의 힘’을 통해 만들어낸 기록이 실리고 있다. 이런 반칙을 막기 위해 학생부의 비교과 항목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6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현행 고교 학생부의 기재 항목을 대폭 줄이고, 대학은 모집 정원의 3분의 1 이상을 학종으로 선발할 수 없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제고를 위한 개선방안’을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그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교육걱정)·좋은교사운동본부 등 교육시민단체와 교사단체가 내놓은 ‘학생부 간소화’ 요구와 일치한다. 조 교육감은 “정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교육청의 개선안을 진지하게 검토해달라”고도 당부했다.

앞서 교육부는 교육현장에서 ‘금수저 전형’이란 비판이 끊이지 않는 학종의 공정성 강화를 위해 학생부 간소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현행 고등학교 학생부의 기재 사항 10개 항목 중 창의적 체험활동·수상경력·봉사 활동 등을 없애고 7개 이내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학생부종합전형 개선방안 제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학생부종합전형 개선방안 제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교육부의 이같은 방침에 대한 교육계의 우려와 반론도 상당하다. 김동석 한국교총 정책본부장은 “이는 ‘대학 자율화’와 정면으로 어긋나며 ‘깜깜이 전형’이라는 학종의 불공정 논란을 더욱 가중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대학의 입학처 관계자들도 “학생부 간소화는 곧 평가 요소가 줄어드는 것”이라며 “평가 지표 단순화로 인해 정확하고 공정한 학생 선발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생부 간소화 논란, 왜 불거졌나

학생부의 중요성이 커진 것은 대입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이 확대되면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전국 197개 4년제 대학의 신입생 모집 정원(35만2325명) 중 학종으로 선발된 인원은 23.6%(8만3231명)다.
하지만 서울대와 연세대·고려대 등 서울 소재 대학 15곳의 학종 선발 인원은 전체의 43.3%(2만903명)로, 전국 대학 평균(23.6%)의 두 배에 가깝다. 특히 서울대는 올해 신입생 3363명 가운데 79%인 2660명을 학종으로 뽑았다. 고려대는 전체 신입생의 64%, 서강대는 49%를 학종으로 선발했다.

이처럼 상위권 대학으로 갈수록 학종을 통한 신입생 선발 인원이 많아지자 수험생들은 학종의 기본 전형 자료인 학생부 관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학생부의 기재 내용은 크게 교과 관련 항목과 비교과 항목으로 나뉜다. 이중 교과 관련 항목은 학생의 학교 수업 참여도와 내신 성적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소위 ‘편법’이 개입될 여지가 적다.

그래픽= 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 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하지만 동아리·봉사·진로활동을 기록하는 학생부의 비교과 항목은 수업과 무관하면서도 다른 학생과 차별화된 스펙을 기재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실제로 이 항목에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작성한 소논문이나 각종 인증시험 결과 등을 기재해왔다. 일부 학생은 이를 악용해 사교육 업체에 수백만 원을 내 소논문을 대리 작성하게 한 뒤 학생부에 기재하는 등 부작용이 있었다.
안상진 사교육걱정 정책연구소장은 “소논문 작성이나 봉사활동 등 사실상 학교생활이라 보기 힘든 활동을 학생부 기재 항목에서 과감하게 삭제하면 스펙 부풀리기 등 과열 현상도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학들 “학생부 간소화 앞서 내실화 논의해야”

대학의 입학처 관계자들은 “학생부 기록의 내실화에 대한 논의 없이 간소화에만 집중하면 결국 학종을 통한 학생 선발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학종의 전형 요소 중 하나인 자기소개서를 예로 들었다. 학종 도입 초기, 일부 학생이 사교육업체에서 대필해준 자기소개서를 대학에 제출하는 등 공정성 논란이 일자 교육부가 자기소개서의 내용과 글자 수를 계속 제한해왔다.

국중대 한양대 입학팀장은 “교육부가 정해준 현행 자기소개서 형식대로 작성하면, 대다수 학생의 자기소개서가 천편일률적인 내용이 되고 만다”며 “학생부도 이런 방식으로 간소화 하면 평가 자료로서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학생부 간소화가 학종의 도입 취지와 상충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원회 한국외대 입학처장은 “내신과 수능 성적 등 정량화된 지표만으로 파악하기 힘든 학생의 잠재된 역량을 발굴하자는 것이 학종의 기본 취지”라고 강조하면서 “학생부의 기록이 다양하고 풍성할수록 학생의 잠재력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데, 정부가 학종의 공정성 논란을 우려한다면서 학생부의 기록을 축소해 평가 지표를 줄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픽= 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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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의 입학관리본부 관계자는 “서울대는 매년 신입생의 80%가량을 학종으로 선발하고 있어 학생부 간소화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교·대학·교육부가 함께 모여 학생부 간소화와 질적 내실화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건설적인 자리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생부 기재 항목은 유지, 대입 자료로는 제한적 허용”

학생부 간소화에 대한 교사들의 의견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간소화에 찬성하는 교사들은 “현행 학생부는 기재 범위가 방만하고 기록 분량도 많아 교사들이 학생부를 기록하는 데 과도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서울의 한 일반고 국어 교사는 “4개 학급에 수업을 들어가는데, ‘과목별 세부 능력 및 특기사항(세특)’을 적어줘야 하는 학생이 100명 이상이다”면서 “모든 학생의 특징과 역량을 파악해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교 교사도 “수업뿐 아니라 학생들의 동아리활동, 방과후수업 관리까지 맡게 되면 학기 말에 학생부 기록 업무로 밤을 새는 일도 흔하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학생부 기재 항목을 교과 성적, 교과 세특, 정규 동아리, 반장 등 자치활동 경력 등 서너 가지만 남기고 나머지는 삭제하는 편이 낫다”고 강조했다.

학생부 간소화에 반대하는 이들은 “학생부란 본래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담은 기록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김동석 한국교총 정책본부장은 “교육부의 학생부 간소화 방안은 학생부를 단순히 상급자료 진학 자료로만 치부한 것”이라며 “이는 학생의 교육적 성장 과정을 담은 종합적 기록물이라는 학생부 본연의 역할과 의미를 저버린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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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훈 미림여고 교장은 “학생부의 기재 항목은 큰 틀에서 그대로 두되, 대학의 평가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항목을 제한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주 교장은 “학생부에 학생의 성장 과정이 종합적이고 진솔하게 담겨야 하는 게 맞다”면서 “하지만 학생부의 비교과 항목을 기재하기 위해 실제로 편법과 반칙이 일어나는 만큼 대학이 학종으로 신입생을 선발할 때 비교과 항목 중 일부는 평가요소로 활용할 수 없도록 제한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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