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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재판' 대법원 저울 위로…법리 판단이 쟁점

중앙일보

입력

지난 5일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문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문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사건은 이제 대법원의 저울 위로 올라왔다. 특검이 항소심 선고 직후 즉각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다.

상고심은 1ㆍ2심의 판단에 법리적인 문제가 있는지를 살피는 ‘법률심’이다. ‘사실심’인 1ㆍ2심처럼 세세한 사실 관계를 따지지 않고 법리적 쟁점에 대해서만 심리한 뒤 판결에 대한 인용ㆍ파기 여부를 결정한다. 원심의 판단을 받아들이면 판결이 확정되고, 파기되면 2심에서 다시 재판해야 한다.

이번 항소심 선고를 놓고 일각에선 ‘특검의 완패’란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1심(징역 5년)에 비해 반 토막 난 항소심 형량(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 때문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아직 이 부회장 측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는 반응이 있다. 사건에 대한 1ㆍ2심 재판부의 판단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등 법리 다툼의 불씨가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리 쟁점을 놓고 여전히 논란이 분분한 만큼 대법원의 판단이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부정 청탁, 경영권 승계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

지난 5일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 차량에 오르고 있다. [뉴스1]

지난 5일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 차량에 오르고 있다. [뉴스1]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에 실제 ‘부정 청탁’이 오갔는지와 ‘경영권 승계 작업’이 이뤄졌느냐는 앞선 재판에서 형량을 결정짓는 주요 쟁점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부정 청탁’과 ‘경영권 승계 작업’이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 현안이 이 부회장의 지배권 강화에 유리하게 작용했을지라도 여러 효과의 일부였을 뿐 승계 작업을 위한 것이란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또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승계 작업을 도와달라는 청탁을 했다고 볼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단은 제3자뇌물죄로 기소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미르ㆍK스포츠재단 출연금 등의 무죄 선고로 이어졌다. 대가성만 입증하면 되는 단순뇌물과 달리 제3자뇌물은 ‘부정 청탁’이 입증돼야 하기 때문이다.

1심의 판단은 달랐다. 개별 현안에 대한 명시적 청탁은 없었지만, 경영권 승계라는 포괄적 현안에 대한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봤다. 그래서 두 사안 중 영재센터 지원(16억8200만원)은 뇌물로 인정했다.

법리 다툼이 치열했던 만큼 부정 청탁과 경영권 승계 작업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이 부회장과 특검의 ‘최종 운명’을 결정지을 전망이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두 쟁점에 대한 1ㆍ2심의 판단이 정반대로 갈렸던 만큼 상고심의 판단 예측도 쉽지 않다”며 “다만 특검이 부정 청탁을 확실히 입증할 새로운 카드를 내놓지 못한다면 항소심 선고를 뒤집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두 무죄’ 재산국외도피 대법원 심리도 주목

지난해 2월 23일 특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 [중앙포토]

지난해 2월 23일 특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 [중앙포토]

이 부회장의 석방에는 재산국외도피를 무죄로 본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재산국외도피는 이 부회장에게 제기된 혐의 중 형량(50억원 이상 시 징역 10년~무기징역)이 가장 높다.

1심은 삼성 측이 용역비 명목으로 코어스포츠의 독일 계좌로 송금한 36억원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다르게 봤다. 최순실(62)씨의 딸 정유라(22)씨의 승마 지원에 쓰인 이 돈이 뇌물로 인정되지만, 재산국외도피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최씨 등에게 용역비가 넘어간 이상 삼성 측이 직접 유용할 목적으로 돈을 빼돌렸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씨가 사용한 명마(名馬) 소유권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도 상고심에서 쟁점이 될 수 있다. 항소심은 말 소유권이 삼성 측에게 있다고 봤고, 이로써 승마 지원 관련 뇌물액이 절반(73억원→36억+말 무상 사용료)으로 줄어들었다. 횡령ㆍ범죄수익은닉 액수도 덩달아 줄었다.

안종범 수첩, 김영한 업무일지…증거 능력도 변수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 장면 [연합뉴스]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 장면 [연합뉴스]

항소심에서 채택되지 않은 증거들을 대법원이 어떻게 볼지도 관심사다. 상고심에선 각종 증거 능력에 대한 판단도 이뤄진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안종범(59)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수첩과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업무일지를 모두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문(傳聞)증거(당사자의 직접 진술이 아닌 전해 들은 말, 기록 등 간접증거)’는 진실을 증명할 근거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특검은 이 증거들을 경영권 승계 작업과 부정 청탁을 입증할 ‘핵심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어 대법원에서 증거 채택에 대한 최종 법률 판단을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사회적 파장이 컸던데다 전직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가 연루된 대형 사건인 만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진녕 변호사는 “과거 어떤 사건보다도 사안별로 법리적 공방이 치열했던 만큼 대법원장,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재판에서 판가름 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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