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now] 이라크 전쟁 3년 … 지금 바그다드에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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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도, 정전도 아이들의 꿈만은 빼앗지 못했다. 이달 초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한 소년이 기름 램프를 켜놓고 공부하고 있다. 이라크는 아직도 극심한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바그다드 AP=연합뉴스]

바그다드 시내 만수르 지역 내 혁명수비대의 한 군사시설. 사담 후세인의 정예부대가 사라진 지 3년이 된 이곳에선 간간이 피아노 클래식 음악이 들린다.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한 막사 안. 카세트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아이들이 열심히 발레를 배우고 있다. "춤을 추면 정말 좋아요. 밝은 세상에 온 것이니까요." 연습을 끝낸 룰라(13)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낡은 분홍색 발레화와 검은 스타킹을 신은 그는 "무엇보다 다시 발레 연습을 하게 돼 너무 다행"이라며 즐거워했다.

룰라는 2003년 봄 미국의 공습 이후 2년 반 동안 발레를 잊어야 했다. 다섯 살 때부터 다니던 바그다드의 음악.발레학교가 약탈과 방화로 파괴됐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와 이라크 정부의 지원으로 6개월 전에 임시 학교가 이곳 막사 건물에서 어렵사리 문을 열었다. 수시로 끊어지는 전기 때문에 카세트에서 나오는 음악도 중단되곤 하지만 룰라는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겠다는 꿈을 아직도 이어가고 있다.

이 시설에는 현재 200여 명의 예술가 지망생이 매일 아침 모인다. 서서히 진행되고는 있지만 이라크 내 전후 재건 사업의 결과다. 하지만 갑자기 선생과 학생이 안 보이기도 한다. 40여 명의 강사 가운데 5명과 학생 10여 명이 최근 몇 달간 명단에서 빠졌다. 사고나 병으로 건강을 잃었거나 해외로 이민을 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지 3년이 됐지만 불안한 치안과 열악한 생활환경이 시민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말이다.

◆ 잉어잡이를 포기한 어부=바그다드 시내를 관통하는 티그리스강과 평생을 함께한 아부 다우드(61). 그는 매일 잉어를 잡아 고급 음식점에 공급해 왔다. 이라크의 최고 요리로 꼽히는 마스쿠프(잉어 훈제)를 만드는 재료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작은 배를 타고 나가 아버지와 함께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았다. 그런 그가 올 들어서는 집에서 쉬는 날이 많아졌다.

어부가 삶의 터전인 강에 나가지 않는 것은 시신들이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시체를 강가까지 옮겨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라고 그는 불평했다. 지난달 바그다드 북부 사마라에서 시아파 황금사원이 폭파된 이후 시신을 접하는 경우는 더 많아졌다.

수니.시아파 종파 간 유혈분쟁 때문이다. 손발이 묶여져 있거나 머리에 총상을 입은 시신도 봤다. "14일 하루 동안 경찰과 군 당국에 발견된 시신이 87구에 달했다"며 "이젠 강에 나가기가 두렵다"고 말했다.

◆ 수니파 엑소더스="이라크는 더 이상 살 곳이 못 된다." 이렇게 말하며 나라를 떠나는 수니파들이 줄을 잇고 있다. 내전으로 치닫는 종파 간 분쟁, 더딘 재건 사업, 매일 발생하는 테러, 50%에 육박하는 실업률, 총선 후 3개월이 지나도 들어설 기미가 없는 주권정부가 이들의 등을 떼밀고 있다. 바그다드의 수니파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칼리드(37). 그는 최근 이라크 서단의 카라마 국경검문소를 통해 요르단으로 가기 위해 출국수속을 밟았다. 이곳에는 요즘 수천 명의 이라크인이 몰려든다. 이른바'수니파 엑소더스(대탈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서너 시간, 길어야 반나절이던 국경 통과시간이 지금은 48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수니파였던 후세인 집권 시절과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때는 시아파가 나라를 떠났다. 칼리드는 "시아파 경찰, 시아파 공무원…. 우리가 발 붙일 곳은 없다"고 말했다.

직장을 구하려 해도 시아파에게 우선순위가 주어진다고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이 수니파에 대한 시아파의 공격이다. 칼리드는 "언론에 보도되는 것은 극히 일부다. 경찰이 직접 나서 수니파 사람들을 납치하고 고문한다"고 주장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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