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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완장 경제와 소탕 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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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논설위원·고용노동선임기자

김기찬 논설위원·고용노동선임기자

“지난해 경거망동하면 스스로 사퇴하겠다고 했다. 도대체 누구 지령을 받고 사용자 편을 드는가.” “최저임금 대통령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냐.”

경제정책은 특정 집단의 심기 대신 시장 생태계 살펴야 #몰아가기를 경계하고 시장 자율을 중시해야 경제 원활

지난달 31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근로자 측 위원이 어수봉 위원장을 성토했다. 면전에서의 모욕이었다. 어 위원장이 언론에 얘기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조정하고, 인상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아우성을 목도한 경제 학자로서의 당연한 걱정이다. 이런 고민을 말하면 안 되는 세상이 된 걸까. 노동계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말이다.

어 위원장은 최저임금 16.4% 인상을 끌어냈다. 노동계에 미소를 번지게 했고, 경영계를 당혹하게 했다. 그런데 그를 ‘갈아치울 대상’으로 삼았다. 다른 견해와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해야 위원회가 돌아간다. 한데 어느새 노동계 기준에 맞춰가는 기구로 변질한 느낌이다.

공교롭게 이튿날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정치권력에 빌붙은 노동조직은 결코 노동운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했다.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다. 그는 한국노총 사무총장 출신이다. 노동운동 경력을 발판 삼아 정계에 입문했다. 노동계에서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렇다 쳐도 그가 원고에 없던 말을 왜 격하게 피력했는지 돌아볼 일이다.

사실 노동계는 현 정부 들어 안 되는 게 없는 형국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면 그렇게 됐다.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향한 항해도 순조롭다. 공공부문의 윗자리까지 꿰찬다. 폴리텍대학부터 산업인력공단 이사장까지. 심지어 한국공항공사의 자회사인 인력파견회사 초대 사장까지 노동단체 간부가 차지했다.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라”며 시위를 하더니 공기업이 파견회사를 차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사장 자리에 앉는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정부라고 노동계 앞에서 강단 있어 보이지 않는다. 8년 만에 열린 노사정대표자 회의에서 노동계는 장막부터 쳤다.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제도개선에 대해서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사회적 대화고 뭐고 없다’는 식의 엄포를 놨다. 한데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묵묵했다. 대화의 기준도 노동계의 심기인 셈일까.

하기야 요즘은 공직자가 뭘 하기 참 힘든 세상이다. 어느 학자는 “최근 정부 일을 많이 하는 교수를 만났는데, 그가 ‘공무원은 가르쳐서 뜯어고쳐야 한다’ ‘잘못하면 잘라야 한다’고 해 황당했다. ‘신흥 상전’의 등장”이라고 말했다. 학자들까지 완장 분위기에 취한 건 아닌지 귀를 의심케 했다. 이러니 공직자가 소신을 가지고 일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경영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경영계는 필요하면 이용하고, 때론 배제해도 무방한 위치로 전락했다.

역사 속 경제는 완장보다는 생태계의 존중 여부에서 흥망이 갈렸다. 기네스북에 오른 중국의 대기근(1958~60년)은 얽히고설킨 생태계를 무시한 참새 소탕작전 탓이었다. 벼 이삭을 먹는 참새 때문에 소출이 적다고 생각한 마오쩌둥의 엉뚱한 작전이었다. 수많은 참새가 포획됐다. 더불어 4000만명이 굶어 죽었다. 참새가 벼에 기생하는 해충을 잡아먹지 않아 수확량이 줄어서다. 완장의 위험성이다.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소탕하려 들어서야 시장 생태계가 온전할 리 없다.

경제는 자유를 먹고 자란다. 로마가 멸망할 당시 유럽은 유대인을 배척했다, 그러나 베네치아는 유대인을 받아들였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고리대금 업자도 유대인이다. 베네치아는 그렇게 유대인의 금융기법을 배우고 써먹었다. 도시국가로서 유럽의 부를 주무르는 무역 강국으로 성장한 배경이다.

완장 경제학이 빚을 수 있는 북방지강(北方之强)에 시장의 남방지강(南方之强)이 어떻게 반응할지 그 결과가 두려워서 역사의 한 토막을 들춰봤다.

김기찬 논설위원·고용노동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