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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376억 퍼주고 처·조카·처남 취업시킨 방사청 직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2년 7월 방위사업청 1층 현관에서는 난데 없는 고성이 오갔다. 당시 계약팀장 A씨는 사업팀장 K씨를 만나 “계약 형태 결정은 계약팀의 고유권한이다. 그런데 왜 사업팀에서 마음대로 분리계약(관급)으로 결정하냐”며 가지고 있는 물건까지 던지며 화를 냈다. 놀란 K씨는 “저도 팀장이다. 너무 심하지 않느냐. 부장실로 가서 얘기하자”고 했다. A씨는 부장실에 가서도 “사업팀이 결정하는 것은 월권행위”라고 강하게 맞섰다. 결국 A씨의 집요한 주장이 계속되면서 계약 형태는 일괄계약(사급)으로 결정됐다. A씨가 강하게 나선 배경엔 방산업체가 있었다.  

감사원 전경. [감사원 제공]

감사원 전경. [감사원 제공]

 계약 형태를 바꿔 예산 376억원을 더 쓰게 한 대가로 본인 뿐 아니라 부인, 조카와 처남을 방산업체에 취업시킨 방사청 직원들의 비위 사실이 감사 결과 드러났다. 감사원은 1일 방사청 등을 대상으로 한 ‘천궁 등 주요 무기체계 계약비리 점검’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천궁은 적의 항공기를 요격하기 위한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로, 다기능레이더와 발사대, 교전통제소 등으로 구성된다. 분리계약이냐 일괄계약이냐에 따라 업체에 지급하는 금액 수준이 크게 달라진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2년 7월 당시 천궁 초도양산 계약 형태를 정하면서 사업팀은 구성 장비를 분리계약 형태로 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했기에 방사청이 장비의 품질을 믿고 개별 업체로부터 직접 구매한 뒤 ‘체계종합업체(방산업체)’에 제공하면 이 업체에 각 구성장비에 대한 계약위험 보상 등 추가 보상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체계종합업체에 구매와 종합을 모두 책임지게 하는 ‘일괄계약’을 맺게 되면 계약금액은 그 만큼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결국 A씨로 압박으로 인해 사업팀은 일괄계약으로 의견을 바꿨고, 체계종합업체 B사는 176억원을 추가로 받게 됐다. 이후 A씨는 전역(2014년 4월)을 1년 여 앞두고 B사의 협력업체 관계자에게 자신의 취업을 미리 부탁했고, 전역 한 달 만에 협력업체에 취업하게 됐다. A씨의 비위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재직 중에 B사에 천궁의 무정전전원장치를 공급하는 업체에게 유리하도록 사양서를 수정해주고, 전역 후엔 이 업체로부터 법인카드를 받아 7300만원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 2015년 11월엔 자신의 처를 이 업체에 취업시키기도 했다.

 업체의 청탁 의혹이 제기된 직원은 A씨만은 아니었다. 원가분석팀에 있는 원가감독관 C씨는 2012년 8월 계약팀으로부터 천궁 계약 형태에 대한 검토 요청을 받은 뒤 원가분석도 하지 않은 채 B사에 유리한 일괄계약 의견으로 통보했다. C씨는 자신의 친형과 장모의 부탁을 받아 2015년 6월과 9월경 조카와 처남을 각각 B사와 그 협력업체에 취업시켰다.

 또 후속양산 사업팀장 D씨는 천궁 후속양산 계약 형태를 결정하면서 2014년 6월 B사로부터 일괄계약이 유리한 것으로 작성된 자료를 받았고, 이를 기초로 일괄계약으로 조달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그해 12월 B사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분리계약에 비해 200억원을 더 주게 됐다. D씨는 B사 등 업체 관계자들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450만원 상당의 골프ㆍ식사 등의 접대를 받은 것으로 감사 결과 확인됐다.

 감사원은 이미 퇴직한 A씨와 D씨, 현직에 있는 C씨에 대해서 방사청장에게 비위행위를 인사자료로 활용하도록 통보했다. AㆍCㆍD씨 등 관련자 5명에 대해서는 수사를 요청했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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