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발 떨어진 연예인 토크쇼 “신변잡기는 이제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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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출연자가 자기 얘기를 들려주며 웃음을 이끌다 갑자기 장기를 선보인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토로하며 눈시울을 붉힌다. 방청객 혹은 시청자도 같이 눈물을 훔친다. 이는 ‘정통’ 토크쇼의 성공 공식이었다. ‘무릎팍도사’가 그랬고, ‘강심장’이 그랬고, ‘힐링캠프’가 그랬다. 관찰 예능과 같은 리얼리티 예능이 주를 이루는 요즘, 이런 토크쇼가 다시 나오면 어떨까. 답은 새 토크쇼 ‘토크몬’을 보면 유추할 수 있다.

신설 ‘토크몬’ 시청률 1% 그쳐 #시청자들 “나도 살기 힘든데…” #감동과 눈물 코드 더는 안 통해

강호동이 진행을 맡아 새로 시작한 ‘토크몬. [사진 tvN]

강호동이 진행을 맡아 새로 시작한 ‘토크몬. [사진 tvN]

tvN·올리브의 ‘토크몬’은 강호동이 MBC ‘무릎팍 도사’ 이후 5년 만에 토크쇼 진행을 맡은 것부터 기대를 모았다. 함께 MC를 맡기로 했던 정용화가 대학원 특례입학 논란으로 하차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강호동과 오랜 콤비인 이수근이 있었고 지난 15일 첫 방송은 시청률 2.7%(닐슨코리아 기준)로 나쁘지 않은 시작을 보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2회 1.8%로 떨어진 시청률은 29일 3회 1%로 떨어졌다.

시청률만 문제가 아니다. ‘토크몬’은 5년 전 토크쇼 SBS ‘강심장’을 데자뷔로 떠올리게 한다. 29일 방송에는 전 야구선수 이종범, 모모랜드의 주이, 배우 김광식, 뮤지컬배우 전성우, 가수 선미 등이 출연해 얘기를 들려줬다. 시작 전 자신이 할 얘기의 키워드를 먼저 제시하는 것마저 ‘강심장’과 유사했다. 그리곤 장기를 선보였다. 선미는 점성학을 공부해 강호동이 “우울한 성향이 있다”고 분석했고, 주이와 전성우는 춤을 췄다. 기존 토크쇼와 다른 점은 게스트에 ‘토크 마스터’로 불리는 고정 출연자를 붙여준 것뿐이다. ‘토크쇼 성공 공식’대로라면, 아마 다음 주 방송에선 누군가 어려움을 토로하고 한발 더 나아가면 눈물까지 훔칠 것이다.

아쉽게도 시청자는 이런 토크쇼 성공 공식에 더는 호응하지 않는다. 30일 ‘토크몬’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곧장 “요즘은 정보가 많아서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yamma**)”는 반응이 달렸다. MBC ‘무릎팍도사’, ‘강심장’ 등 토크쇼 강자들이 물러난 2013년 이후 토크쇼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장수 토크쇼였던 SBS ‘힐링캠프’ 역시 2016년 종료됐고, 10년간 방송했던 tvN ‘현장토크쇼 택시’는 지난해 11월 안내도 없이 종방됐다.

유료채널의 한 예능 PD는 “예전에는 시청자나 대중이 연예인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며 동경의 눈으로 바라봤다면, 지금은 반감이 깔려있다”며 “진솔한 어려움을 토로해도 ‘나도 살기 힘든데 왜 저렇게 징징댈까’ 생각하며 채널을 돌려버린다”고 말했다.

고품격 음악방송을 내세우지만 B급 감성을 자극하는 토크쇼 ‘라디오스타’. [사진 MBC]

고품격 음악방송을 내세우지만 B급 감성을 자극하는 토크쇼 ‘라디오스타’. [사진 MBC]

현재 방송 중인 몇 안 되는 토크쇼 중 대표적인 게 MBC ‘라디오스타’다. ‘라디오스타’는 공공연히 ‘고품격 음악방송’을 내세우지만 전형적인 ‘B급’ 방송이다. 좁은 공간에 게스트 4~5명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빈틈이 보이면 4명의 MC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게스트를 놀리거나 곤란하게 만든다. 웃음은 게스트의 얘기보다 게스트를 당황시킬 때 터져 나온다. ‘라디오스타’의 스핀오프라 할 수 있는 MBC 에브리원의 ‘비디오스타’도 마찬가지다. 예외적이지만 KBS2 ‘해피투게더’처럼 다른 서브 코너를 병치해 토크쇼 형식을 희석하거나 KBS2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처럼 일반인 이야기를 내세우는 것도 토크쇼가 살아남는 방법이 됐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정신건강의학 전문의)는 연예인 토크쇼의 시들한 인기에 대해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환경 속에서 젊은 세대들이 경제적, 사회적 기회를 박탈당하면서 각박해지고 여유가 사라진 결과”라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며 “연예인들이 나와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하는 건 흥미를 끌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해지거나, 외면받거나. 여유가 사라진 시대는 연예인 신변잡기 토크쇼를 이렇게 바꿔놓았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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