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코드'의 댄 브라운 … 상상력의 비밀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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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4000만 권 이상이 팔린 소설 '다빈치 코드'의 '비밀'이 하나씩 벗겨지고 있다. 영국 법정에 선 작가 댄 브라운(41)의 증언을 통해서다. 브라운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제기된 표절 소송의 증인으로 나왔다. 1982년 발간된 논픽션 '성혈과 성배'의 저자인 마이클 베전트와 리처드 리가 "브라운이 우리 작품의 주요 아이디어를 베꼈다"며 브라운의 책을 출판한 랜덤하우스를 상대로 낸 소송이다.

13일 시작된 증언을 통해 아직까지 표절 여부에 대한 뚜렷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평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브라운의 저술 배경과 습관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라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브라운은 첫날 재판에서 "어릴 때 집에 텔레비전이 없었다"며 "대신 퍼즐.암호 게임을 즐겼다"고 밝혔다. 이것이 상상력을 키워 창작에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또 "머리를 쓰는 퍼즐이나 암호를 좋아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수학 교사였던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했던 '머리 쓰기' 교육의 영향"이라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가족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집안 곳곳에 공들여 숨겨 놓고 보물찾기하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법정 증언을 앞두고 언론들을 통해 특이한 저술 습관도 공개됐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책의 마지막 장을 먼저 써두는 것은 그만의 노하우다. 영국 BBC 방송은 브라운이 매일 오전 4시에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한다고 전했다. 그는 책상 위에 고풍스러운 모래시계를 올려놓고 한 시간이 지날 때마다 일어나 스트레칭과 팔굽혀펴기를 한다. 글이 풀리지 않을 때면 거꾸로 매달리기를 한다. "거꾸로 매달리면 기존의 생각을 뒤집어 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란 것이다. 거꾸로 매달리기를 한 뒤 소설의 구성을 뒤바꾼 적도 있다고 한다.

인기 작가가 되기 전의 어려웠던 생활도 알려졌다. 그는 서면 진술서에서 "'다빈치 코드'를 쓰기 전까지는 책 홍보를 위한 여행 비용까지 직접 대야 했고, 차를 끌고 돌아다니며 차 밖에서 책을 팔아야 했다"고 밝혔다. "작품 활동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도 했다.

연상의 아내 블라이드(53)가 창작에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남편과 '띠 동갑'인 블라이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과 성배의 역사 등 주요 자료를 수집.분류하는 일을 맡았다. 브라운은 자신의 아내에 대해 "다빈치의 광신자이자 나를 이 주제에 빠져들게 만든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브라운 책의 해설서인 '코드의 비밀' 편찬에 참여했던 데이비드 슈가츠는 "브라운의 부인인 블라이드가 이 책에 담긴 아이디어의 근원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브라운은 전작 '천사와 악마'의 앞머리에 '블라이드를 위해'라고 써서 책을 아내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다빈치 코드'에선 '다시 블라이드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더'라고 했다. 아내의 역할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14일 이틀째 증언에서 그는 "'다빈치 코드' 창작 계획을 처음 세웠을 때는 아직 '성혈과 성배'를 읽지도 않은 상태였다"며 표절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성혈과 성배'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살아남아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고, 그 후손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는 가설을 다룬 책이다. 브라운은 "이 책을 참고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 참고 문헌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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