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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경쟁 시대의 신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나라 언론계는 지금 새로운 상황을 맞고 있다. 권력으로부터의 도전은 언론의 숙명이지만, 자유로부터의 도전은 우리의 언론 환경에선 다소 생소한 느낌마저 든다.
우선 새 언론관계법은 신문의 발행조건, 신문사 설립의 조건 등을 많이 풀어놓았다.
그동안 우리나라 신문들은 표현의 자유, 정보 접근의 자유, 배부의 자유를 얘기하기에 앞서 원천적으로 발행의 자유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4월부터는 신문사들의 카르텔까지도 해제되었다. 이제는 신문들이 남의 탓만 하고 있을 형편이 아니다. 스스로 새로운 환경에 대응해야 하며, 스스로 자신의 정도를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벌써 사회 일각에선 백화 제방의 시대니, 백가쟁명의 시대라는 말로 언론의 새로운 상황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려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일직이 1960년 4·19직후 언론의 방만 시대를 경험했던 우리는 그와 같은 사회적 우려에 공감한다. 세계의 언론 사률 보아도,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에는 몇 십 개 밖에 없던 신문이 무려 1천 수백 개로 늘어났다. 세계 제1차 대전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이 탄생하고 나서도 독일에선 10년 사이에 4천7백 개의 신문이 쏟아져 나왔었다.
문제는 이들 신문들이 사회 혼란, 정치 분란의 온상이 되어「나폴레옹」이나「히틀러」같은 희대의 독재자를 불러들이는 구실을 주었다는데 있다.
물론 우리는 지금 그런 상황을 걱정해야 할 단계에 있지는 않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다르고 신문사의 구조 또한 옛날과 같을 수 없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국민의 땀과 피가 배어 있는 그 값진 자유를 어이없게 팽개쳐 버리는 일은 먼저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신문의 자유경쟁은 그런 점에서 약이 될 수도 있다. 신문들은 이제야말로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경쟁을 통해 역사발전의 에너지로서 새로운 역할과 사명을 찾아야 할 때다.
오늘「신문의 날」을 맞아『자유경쟁 시대의 신문』이라는 표제와 함께 우리가 새삼 주위를 되돌아보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첫째, 신문사도 다른 산업분야 못지 않게 첨단기술 산업으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문사가 단순히 뉴스를 종이에 찍어내는 인쇄소의 구실에 머무는 시대는 벌써 지나가도 한참 지나갔다. 오늘과 같은 기술문명 사회에서 정보전달의 수단과 폭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우리도 자기향상 노력에 눈을 돌릴 시대가 되었다.
둘째, 우리는「왜」의 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동안 사실의 보도 하나만으로도 힘겹던 우리 언론은 이제 사회 현상의 구조와 내면까지도 제대로 분석하는 기능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셋째, 전문성의 문제다. 언론은 사회의 다변화, 전문화 추세에 뒤따라가기보다는 스스로 이니셔티브를 갖고 옳은 방향에 관해서 무엇인가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의 언론들이 1970년대에 일본산업의 구조적 변신을 부추기고 격려할 수 있었던 것은 기술문명의 급격한 변화에 관한 이해가 깊었기 때문이다.
네째, 신문 본연으로 돌아가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하는 일이다. 최근 새마을 부정사건과 관련해 신문이 진작 제구실을 했으면 우리 사회는 그와 같이 엄청난 비리를 미리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개탄들이 나왔던 사실을 귀담아 두어야 할 것이다. 이제 언론은 관 급 자료의 안이한 취재 타성에서 벗어나 스스로 사회의 구석구석을 감시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권력도 언론의 그와 같은 노력을 귀찮아하거나, 눈 흘겨보아선 안 된다.
신문이 건강할 때 국민도 함께 건강하며, 그 나라 또한 뿌리가 든든해진다. 이것은 민주사회의 살아 있는 교훈이다.
자유경쟁 시대에 언론이 할 일은 오히려 더 많고 더 무거운 것을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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