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 교수의 철학기행(14)-엄정힉<서강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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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개방사회와 그 적들』이란 책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포퍼」(Karl. Popper)는 런던시내에서 기차로 1시간 가량 달려야 하는 키인리란 한적한 마을에 살고 있었다. 이미 86세의 고령인 그는「비판적 합리주의」라는 방대한 체계의 정리에 마지막 정열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았다.
영미의 분석철학과 유럽대륙의 사회철학 주류에서 벗어나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리하여 그의 입장이 잘못 전달되었거나 과소 평가되어 왔던 것이 분명한 이 노 철학자를 만날 수 있게된 것은 여간 큰 행운이 아니었다.
「포퍼」경은 나를 편안한 소파에 앉히고 자기는 걸상에 걸터앉았다. 극구 사양하자 허리가 약해서 걸상이 오히려 더 편안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미리 준비해 온 인삼차 한 상자를 건네며 모든 병에 효험이 있지만 약한 허리에는 특효가 있다고 짐짓 둘러대자, 그는『만병통치약은 아무 병에도 쓸모가 없는 법이라오』하며 소탈한 웃음을 웃어 보였다. 그러나 나는 바로 이 진술을 매우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였다. 그의 학문적 편력은 바로 이 만병통치를 자처하는 온갖 종류의 비합리주의를 상대로 한 지적 투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증주의자들은 과학적 명제가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보이기 위하여 경험적 검증가능성(verifiability)의 기준을 제시하는데「포퍼」는 이러한 검증이 가능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의 입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과학적 가설이라는 것도 예술가들의 언어처럼 상상력의 소산에 불과하며 이것이 실험과 관찰 혹은 추론에 의해서 부정되지 않는 한 과학적 진리로 남아있고 동시에 합리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라도 반증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적이며, 아직 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또한 합리적이다. 정말 과학은 이것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다. 바로 이점 때문에 과학은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신앙과 구별된다.
여기서「포퍼」는「마르크스」와 같은 결정론자들이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형이상학에 「과학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여 합리성을 가장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러한 시도는 필연적으로 역사적 예언의 미명아래 맹목적인「폐쇄사회」를 낳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가 혁명적 수단에 의한 유토피아 실현을 주장하는 프랑크푸르트학파「마르쿠체」(H. Marcuse)를 TV토론에서 통렬하게 논박하고 점진적인 개혁을 통한 자유 민주적「개방사회」를 건설하자고 제안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포퍼」가 말하는「개방사회」란 인간은 아무도 완전하지 못하므로 아무도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할 수 없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명령과 복종이 아니라 자유로운 토론을 통한 합리적인 합의이며 이러한 합의의 결과로 얻어진 공정한, 그러나 언제라도 수정될 여지가 있는 제도들이다.
나는 우리 나라의 정치적 상황에 비추어「점진적 개혁」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설명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길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으나 그것이 동양적인 중용사상과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음을 지적해 주었다. 점진주의는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중간쯤에 서 있지만 이두 입장과 분명히 구별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양자와 동시에 단호히 대적할 용의가 있다는 점에서 결코 적당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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