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놀란 우리의 생필품 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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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주요 생필품 등 소비재의 국내 가격이 국제 가격에 비해 비싸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의 가격 정책은 산업화 과정에서 소비자 보호보다는 생산자보호 위주였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일반 소비재를 비싸게 사 써 온 일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국내 관련산업을 지원, 육성하는 뜻에서 오랫동안 소비자들은 비싸도 참고 사 써 왔다.
이제는 경제의 양적, 질적 성장과 함께 흑자 경제시대에 소비자의 희생만 강요할 수는 없으며 소비재가격 정책에도 일대전환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소비경제는 경제후생은 물론 소득 재분배, 그리고 경제정의 문제와도 직결되는 점을 감안하면 서둘러 소비생활의 안정과 보호가 절실한 시점이다.
정부에서 최근 주요 생필품을 포함하여 소비재에 대한 국내외 가격을 비교한 결과 국내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싼 것으로 나타나 이들 비싼 품목의 수입을 전면 확대, 값싼 외국상품을 사쑬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한다. 조사대상 92개 품목 중 71개 품목이 최저 7%에서 최고로 11·5배 가량 국내 가격이 국제 가격보다 비싼 것으로 나타났고, 참기름의 경우 국내에서 1백50g당 4천2백원인데 비해 미국은 6백72원, 일본은 8백93원, 싱가포르는 3백55원으로 국내 가격이 5∼11배 비싼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의 경제 정책이 얼마나 소비자 보호를 외면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고도 남는다.
정부에서 소비자 보호를 위해 소비재의 국제가격을 비교하고 그 자료를 토대로 수입을 확대함으로써 마치 소비자 우대정책을 펴고 있는 양 부산을 떨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선택이 걱정수준의 국제수지 관리, 물가안정, 통상마찰의 완화를 위해 불가피한 점을 생각할 때 국민들에게 큰 생색을 낼 것까지는 없다고 본다.
또 단순 가격비교로 비싼 품목을 수입 개방함으로써 이른바 민감 품목의 수입루트를 저항 없이 트려는 저의는 없는지 의심스럽다.
버터·치즈 등 낙농제품과 오렌지주스·위스키 등의 수입개방 문제를 놓고 볼 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싼 소비재는 과감히 수입을 확대하려는 정책에 찬성한다.
이제는 소비자도 생필품 정도는 저렴하고 안정된 값에 사 쓸 수 있게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당면 최대 경제과제인 경제안정을 위해서도 이 같은 정책의 선택은 바람직하다.
물가안정 등 경제안정을 위해 다각적으로 정책이 동원되고 있는데 생필품 등 소비재 가격안정 시책도 빼놓을 수 없다. 심지어 물가안정을 위해 부담이 큰 원화 절상 수단까지 활용하고 있는 실정에서 높은 관세를 내려 수입품을 싸게 공급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 된다.
그러나 쇠고기의 경우처럼 비교우위 이론만으로 쉽게 수입을 결정할 수 없는 품목이 아직도 많은 점을 유의하여 소비자 보호의 미명아래 무분별한 수입개방이 이루어져서는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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