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두 차례 출동 검토"|정호영씨가 털어놓은 "5공화국 마무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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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군의 정치적 중립을 추구하며 제6공화국의 출범을 가져온 정호용 전 국방장관은 최근 기자와 만나 87년을 전후한 일련의 비화를 밝혔다.
정씨는 노 대통령의 민주화의지를 뒷받침하며 군의 동요를 막았던 사실, 6·29선언의 전말,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의 처리문제, 군인사의 내막 등에 대해 소상히 설명했다.
국방장관 퇴임 직전 광주사태를 거론, 노 대통령의 큰 부담 하나를 덜어주려 했던 그는 민정당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대구 서구-갑에서 출마한 상태.
그는 광주사태와 관련,『한마디로 군은 훌륭했다. 굳이 책임을 따지면 반반이다. 군도 최선을 다했다』고 단호하게 말했었다.
그는 또『광주시민의 명예회복을 말하는 것은 맞지만 초동단계의 진압문제만 강조하는 것은 틀리다. 아무리 평화적 시위라고 하지만 계엄 하에서 어떻게 집단행위가 가능한가. 포고령위반부분에 대해서는 말이 없이 군만 탓하는 것은 곤란하다. 군은 시민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또 이와는 무관한 사람들만 책임자 운운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내무장판 몇번씩 사양>
다음은 정씨와 나눈 많은 얘기들의 일부를 간추린 것이다.
-박종철군 사건 때「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때리느냐, 내각이 총 사퇴해야 한다」며 퇴진 하셨다는 데요.
▲사실 내무행정은 적임이 아니라며 사양했지만 전두환 대통령이 내무를 맡아달라고 해요. 그래 맡게는 됐는데 박군 사건을 보니 말이 안 돼요. 그래 내각 총 사퇴론을 말했더니 몇몇 장관들은「그것은 일을 큰 것으로 보이게 한다」며 반대합디다. 그래도 책임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도 총 사퇴는 불가피하다고 했습니다. 특히 책임질 사람이 물러날 생각을 않기에 총 사퇴론을 강조했습니다.
-그 당시 새마을 문제도 꽤나 시끄러웠을 터인데요.
▲내무장관더러 명예총재니 뭐니 하는데 가만히 알아보니 걱정이에요.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대통령 친동생을 구속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우선 새마을회장 자리를 내놓게 했지요. 여러 사람들이 걱정을 했고 노태우 당시 민정당대표위원도 많이 생각한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고 노 대표가 자신의 대통령선거를 위해 말할 계제도 아니지 않았겠습니까. 노 대표는 의리를 지키느라 고민했을 겁니다.
-6·29선언은 정 장관의 지원이 컸다고들 하는데요.
▲그것은 노 대통령의 결단에 따른 것입니다. 나는 약간의 조언자라고나 할까요.
사실 4·13조치가 발표되자 모두가 걱정을 했습니다. 모씨만이 타당성을 주장하고요. 그 즈음 내무장관으로서 모든 시위현장에 미행을 했었는데 처음과는 양상이 달라요. 진정한 국민의 소리가 뭔가를 확인했습니다. 나 하나가 옳다고 해도 국민 대다수가 다른 것(직선제)을 원하면 따라가는 게 정치가 아니겠습니까.
4·13이 몇 달만 늦춰졌어도 국민들이 납득했을지 모르니 정책에는 시기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은 셈이죠. 어쨌든 6·29시위사태이후 6월 17일 즈음에는 시위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l8일 저녁 집으로 군의 후배들이 찾아와「군에 출동명령이 내러질 단계입니다」고 하는 거예요. 깜짝 놀라 그들의 의견을 물어보니 군이 나갈 때가 아니라는 거예요.

<"출동 부당" 강력 진언>
군이 나가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군은 어느 개인의 것이 아닌 국민의 것이라는 것은 평소의 소신이기도 했고요. 그래 다음날(19일) 아침 안기부장을 찾아가「절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안기부장도 같은 감을 갖고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통령의 결심사항인 만큼 안기부장 힘으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디다. 그 즉시 민정당으로 노 대표를 찾아갔습니다.「군 출동은 계엄이 아닌가. 4·13을 이런 식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소리를 힘으로 막겠다는 발상은 곤란하다」고 했더니 노 대표도 절대 동감입디다. 시간이 없으니 당장 대통령에게 재 건의를 올려 후퇴시키도록 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반드시 군과 경찰이 아닌 정치적 해결방안을 찾아야한다고도 했습니다. 사실 나 자신에 대해서는 바른말 잘하고 고분고분하지 않으니 대통령이 다소 섭섭하게 생각해 내가 직접 나설 계제는 아니었지요. 노 대표는 그 즉시 청와대로 올라갔고 저녁에서야 보류결정이 났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정 장관께서 그 분에게 직선제로의 전환을 극구 주장했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2∼3일 뒤에 노 대표를 연희동 자택으로 찾아갔습니다. 노 대표가 먼저「직선제를 해야겠다」고 단호히 말합디다.「정말 잘 생각했다. 나도 직선제가 좋은 제도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국민이 원하니 따라야한다고 본다. 정 직선제에 문제가 있으면 직선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고치면 된다」고 했습니다.
덧붙여 직선제 관철이 안되면 탈당 및 대통령후보 사퇴까지도 고려해야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노 대표의 의지는 단호했으니 든든했습니다. 그후 노 대표는 8개항을 구상해냈는데 그날 합의한 것은 직선제 한 가지 뿐이었습니다. 8개항은 노 대표가 자신의 측근들과 구상한 것으로 그분은 그런 의미에서 정말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노사분규 때도 위기>
-국방장관이 될 때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노 대표가 국방으로 들어와 함께 일해달라고 합디다. 민주화를 위해 일하는 그를 돕지 않을 리가 없지요. 하지만 전대통령이 나에 대해 다소의 오해와 섭섭한 게 있었으니 그런 시국에 국방을 맡길 리가 없어 어려울 거라 했습니다. 노 대표는 자신도 군을 쓸 생각은 전혀 없지만 누군가 든든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며 대통령에게 자신의 직위를 걸고 요청한 것으로 압니다.
결국은 국방장관이 됐지만 내 문제로 개각작업이 늦게까지 진통을 겪었다니까… 이런저런 사유로 전대통령에게 부담을 느끼고 있지요.
-노사분규가 한창 때인 8월에도 군 병력 동원문제가 검토됐다고 하던데요.
▲울산시청이 불타던 날 청와대에서 긴급회의가 열렸습니다. 당초에는 나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다가「결정」을 한 뒤 부르더군요. 늦게 서야 올라갔더니 최소한 울산일원에라도 위수령은 내려야겠다고 통보하더군요.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사태추이를 보면 달라질 수 있을 테니까요. 6·29이후 경찰도 나선 적이 없으니 일단 경찰력으로 사태를 진정시킨 다음 안될 경우 나서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청와대를 나와 총재가 되어있던 노 대통령을 만났더니「정국을 망친다」며 펄쩍 뛰더군요. 노 총재는 군이 정치현장에 나서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고 그런 점에서 나와 의기투합했다 고나 할까요.
-연말의 군 정기인사 때도 진통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차기대통령이 두 달 후면 취임하는데 인사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요. 다른 나라의 경우를 봐도 그렇고. 하지만 결정권자인 대통령의 견해는 다른데 다른 방법은 없지 않습니까.
-전대통령과의 관계를 놓고 말이 많은데요.
▲그분은 리더입니다. 상황판단이 빠르고 추진력이 강합니다. 누구에게나 장단점은 있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분은 격식을 따지는 분이니까 옳다고 판단되면 그대로 해버리는 나의 태도에 다소의 섭섭함도 가질 수 있고-. 또 격식을 안 따지고 담배를 피우는가하는 나의 자세도 안 좋아 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충성은 일로 하는 것이지 격식 갖추는 게 아니지 않아요.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우리모두가 그분(전대통령)을 따뜻하게 맞아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뒤에서 돌팔매나 하는 일은 좋은 게 못됩니다.

<민정당에서 출마 강청>
-국방장관직 사퇴를 고집하셨다는 데.
▲새 술은 새 부대에 라는 생각도 있고 동지적 입장에서 일해온 노 대통령을 돕는 것은 내가 물러나 주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또 일종의 빚을 진 전대통령이 물러나는데 나도 물러나는 게 부담을 더는 것 갖기도 하고, 그래서 나왔는데도 꼭 출마해달라고 해서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게 됐습니다. 정치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지만 정말 열심히 해볼 참입니다. 내 지역구도 전국제일의 마을로 만들고 중앙에서의 정치도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싶고요.
-어떻게 대구에서 지역구로 나서게 됐습니까.
▲노 대통령이 나를 생각해서 대사나 시켜주면 할까 생각했고 정 사람이 없어 전국구의원이나 한 자리 주면 할 까도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민정당에서 연락이 왔어요. 서울에서 출마해 달라고요.
그래서 주위사람들과 의논한 뒤 어차피 나설 것이면「나도 고향이 있는 사람이니 대구에서 나서겠다」고 얘기했습니다. <인터뷰=김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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