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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민섭의 변방에서

잘 소개해드릴 테니 책을 보내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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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출간된 지 3주째, 입소문을 타고 4쇄를 찍은 책이 있다. 김동식 작가의 소설집 『회색인간』이다. 우화와 반전의 묘미를 잘 살린 그의 글은 재미있으면서도 동시에 사회적이다. 30대, 남성, 신인작가, 라는 그의 이력은 아직 그의 세대가 멸종하지 않았음을 선언하는 듯하다. 그의 글을 세상으로 불러낸 것은 소수의 심사위원이 아니라 무수한 독자들이다. 그는 공모전이라는 등단 제도를 통해 작가가 된 것이 아니다. 대신 온라인 공간에 1년 6개월 동안 300여 편이 넘는 단편소설을 올리며 자신의 독자를 만들었다.

김동식 작가는 전에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책을 기획한 나에게도 그의 섭외를 요청하는 연락이 온다. TV, 라디오, 팟캐스트 같은 온갖 매체에서 그를 찾는다. 그런데 PD와 작가들이 반드시 전하는 말이 하나 있다. “책은 몇 권을 어디로 보내주시면 됩니다”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관례이려니, 하고 출판사에 책의 발송을 요청한다. 그러면서 책과 작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편성한 방송국에서 어째서 ‘도서구입비’를 책정하지 않는지 묻고 싶은 심정이 된다. 편집자에게 물어보니 “아, 원래 그래요…”하는 답이 돌아왔다.

변방에서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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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상암동의 모 방송국에서 촬영을 마치고 담당PD에게 도서구입비 책정 여부에 대해 직접 물었다. 여기에도 출판사에서 책 2질(6권)을 보냈다. 그는 자신들뿐 아니라 다른 방송국에서도 그 비용이 책정되어 있지 않다면서, 자신도 작가의 책을 직접 사서 보았다고 답했다. 나는 무척 미안해하는 그에게 “이건 PD님께서 사과하실 일은 아니고 방송국에서 제도를 마련해야 할 문제 같아요”하고 말했다.

이름을 알 만한 방송국에서 고작 책을 구입할 예산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출판사에 매번 “잘 소개해드릴 테니 책을 보내주세요”하는 것은, 식당에 들어가 “제가 잘…”하는 일부 파워블로거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 소속 PD와 작가, 기자들은, 출판사의 편집자들은, 작가들은, 모두 피해자가 된다. 책을 만들고 보내는 것은 ‘원래’, ‘당연한’,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방송사에서는 도서구입비부터 제대로 책정해야 한다. 몇 개의 프로그램을 편성하거나 개편하는 일보다 그게 더욱 책 읽는/만드는/쓰는 문화를 확산시키는 길이 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