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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풍자 코미디언 김형곤씨를 애도하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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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는 '코미디의 본질은 풍자'라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풍자 없는 코미디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몸으로 코미디를 할 때 그는 머리로 코미디를 했다. 남들이 부딪히고 넘어질 때 그는 뼈 있는 말 한마디로 촌철살인의 유머를 제공했다. 그러기 위해선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했다. 매일 신문 10개를 뒤지며 아이디어를 찾을 정도였다고 한다.

웃음에 대한 그의 철학은 대표작 '회장님 우리 회장님'에 그대로 나타났다. '잘돼야 될 텐데' 등의 유행어를 남긴 이 TV 코미디 프로에서 그는 정권 실세나 기득권층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서슬 퍼렇던 5공 시절, 그의 풍자는 신산한 삶을 이어가던 서민들에게 카타르시스 그 자체였다.

그는 코미디 프로에서 풍자가 사라졌다며 아쉬워한 적이 있다. 참여정부 들어 대통령이나 권력 실세들에 대한 풍자가 사라진 대신 허무한 코미디가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썰렁 개그'나 '허무 개그'로 가벼운 웃음만을 제공하는 지금의 코미디에 대한 일침이다. 후배나 동료 코미디언들이 잘 새겨들어야 할 얘기다.

그는 지도자들의 시각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감히 나를 코미디 소재로 삼느냐'는 식의 권위주의적 자세는 지도자를 국민에게서 멀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결국 풍자가 사라진 것은 힘 있는 사람들의 압력 때문이며, 국민에게 건전한 웃음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지도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의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밤 10시 넘어서는 정치인들 얼굴이 절대 방송에 안 나오게 해야 한다"는 말은 정치인들이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