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엄마랑 딸이랑 한옷 입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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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교수(右)와 딸 김나영양은 비슷한 분위기의 옷을 즐겨 입는다. [김성룡 기자]
협찬=꼼뜨와 데 꼬또니에

'어머니는 마담복, 딸은 영캐주얼'로 대표되던 숙녀복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젊은 엄마'로 불리는 중년 여성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연령에 맞춘 옷을 찾기보다 취향에 맞는 스타일을 추구한다. 백화점과 제조 업체들도 이런 추세에 맞춰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백화점은 영캐주얼 부티크를 늘리고 제조 업체들은 연령대별 타깃을 무시한 감각의 옷을 내놓고 있다.

◆엄마와 딸이 같이 입는다 = 서울 압구정동에 사는 동덕여대 의상학과 김혜경 교수는 대학생인 딸 김나영양이 김 교수의 옷을 입고 외출할라 치면 한마디 한다. "얘, 너 그 옷 깨끗이 입어라. 나중에 엄마도 입어야 하니깐, 알겠지?" 물론 김 교수가 딸 몰래 딸의 옷을 입고 외출하는 일도 예사다.

김 교수는 또 "요새 마담복(사이즈가 크고 화려한 디자인으로 중년 여성을 타깃으로 만든 여성복) 입는 엄마들 별로 없어요. 다들 사이즈는 젊은 아이들보다 크지만 디자인은 젊은 스타일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딸 김나영양도 마찬가지다. "엄마 몰래 엄마 코트나 핸드백 등을 걸치고 나오는 친구들이 많아요. 사실 엄마들이 고급 옷을 많이 가지고 있잖아요. 어른스러워 보이는 것도 있고요."

김혜경 교수와 딸 김나영양은 지난해 12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꼼뜨와 데 꼬또니에'패션쇼 무대에 섰다. 전 세계에서 뽑힌 9쌍의 일반인 모녀 모델 사이에 최초의 아시아인 모녀로 참가한 것이다. 카탈로그에도 당당히 사진을 올렸다. 김 교수 모녀는 한국 수입원인 현대백화점에서 개최한 엄마와 딸 모델 찾기 이벤트에 응모한 500쌍 중에서 1등으로 뽑혀 이런 기회를 잡았다. 프랑스 숙녀복 브랜드인 '꼼뜨와 데 꼬또니에'는 프랑스에선 엄마와 딸이 함께 입는 옷으로 유명하다. 홈페이지 주소도 프랑스어로 엄마와 딸을 뜻하는 'www.meresetfilles.com'이고, 매년 패션쇼에 일반인 모녀 모델을 세우는 것이 전통이다. 주로 면소재의 니트 웨어에 심플한 디자인을 내놓고 있다.

백화점 관계자는 "예전 마담복 고객들이 이젠 영캐주얼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런 추세 때문에 마담복 업체들도 젊은 감각의 디자인을 상품에 많이 반영하고 있다"고 최근의 경향을 설명했다. 예전보다 자기 계발의 기회를 많이 갖게 된 중년층 여성들이 스포츠 센터 등으로 몰리면서 영캐주얼 숙녀복이 '그림의 떡'이 아닌 '내 손 안의 떡'이 되었다는 말이다.

◆연령 경계가 무너진다 …'Non-Age 패션'= 엄마와 딸이 같은 옷을 입는 것은 물론이고 연령대별 타깃을 무시한 옷들을 'Non-Age 패션'이라고 부른다. 옷을 디자인하는 데 연령별 타깃보다 개인의 취향을 중시한 패션이다. 점잖은 패션보다 젊게 입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젊은 패션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중년층을 겨냥한 트래디셔널 브랜드로 인식되던 LG패션의 닥스 숙녀복이 최근 내놓은 봄.여름 신상품은 'Non-Age 패션'의 전형이다. '환골탈태'라는 말을 실감하기에 부족함이 없이 한층 젊어진 디자인을 선보였다. 전 세계적인 트렌치 코트의 유행 속에 트렌치 코트의 명가 닥스가 내놓은 제품은 디자이너 브랜드 못지않게 젊은 느낌을 강조했다.

LG패션 김영순 상무는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기존 고객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이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며 브랜드 운영 방안을 설명했다. 전통적인 닥스의 스타일을 찾는 단골 손님도 무시할 수 없지만 젊은 감각을 한층 강화하겠다는 말이다.

'Non-Age 패션'의 중심엔 패션의 '캐주얼화'가 맞물려 있다. 일할 때나 여가 시간에도 입을 수 있는 가벼운 옷차림이 소비자의 관심을 끌면서 연령대가 높은 고객들도 화려한 색감의 니트 웨어나 청바지를 비롯한 데님 소재의 바지를 즐겨 찾고 있다.

Non-Age 패션이 출현한 데에는 젊은이 못지않은 몸매를 자랑하는 중년층이 늘고 있는 것도 한몫했다. 직장 여성은 물론이고 전업 주부들조차 스포츠센터를 찾아 체형을 관리하는 시대다. 과거 마담복에서 볼 수 있었던 박스형의 펑퍼짐한 여성복이 더 이상 시선을 끌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글=조도연 기자 <lumier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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