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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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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950년 한국전쟁에서 중국이 북한에 군사적 지원을 하였다는 이유로 미국은 중국을 침략국으로 규정하고 중국을 고립시키는 외교정책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69년 1월 출범한 닉슨 행정부는 당시 중국과 소련 사이의 분쟁에 편승해 중국과 대화 채널을 만들고자 했다. 중국의 최고지도자 마오쩌둥 역시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고자 했다. 71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세계탁구 선수권대회에 중국대표단이 참가했다. 대회가 끝나고 71년 4월 중국은 그 대회에 참석한 미국선수단15명을 베이징으로 공식 초청했다. 이 친선경기는 냉전의 상징이었던 두 나라가 우호적인 접근을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석 달 뒤 미국의 헨리 키신저 대통령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이 베이징을 극비리에 방문해 주언라이 수상과 회담을 했고 두 나라는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주석의 역사적인 회담계획을 공동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닉슨의 베이징 방문은 72년 2월에 실현됐다. 미국과 중국 수교의 물꼬를 튼 이른바 ‘핑퐁외교’는 스포츠교류를 통해 국가 간의 관계개선을 이룩한 대표적인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