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중가요의 미래|김성고<중앙일보 출판기획위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젊은 평론가 김창남씨가 가요를 흥얼거리고 외국 팝송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한방 먹였다. 『월간중앙』 4월호에 실린 그의 글 「대중음악의 정치경제학」을 읽어 보면 대중음악을 주종으로 하는 대중문화는 『대중을 탈 정치화시키고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함으로써 통치의 수동적 적체로 재생산하는 조작』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이다.
또 사랑과 이별타령에만 치우치는 대중가요의 가사 속에는 『어떠한 의미의 건강하고 비판적인 현실의식의 여지도 존재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참 뼈아픈 지척이다.
이미자의 노래 한 두 곡쯤은 너끈히 부르고 TV에서 젊은 가수들의 현란한 몸짓에 정신을 빼앗기는 보통사람들로서는 머쓱해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오락수단이라곤 노래밖에 없어 유행가를 따라 부른 것이 그만 정치인들의 꼭둑각시 노릇을 한 짓이라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이 원망스럽다.
김씨의 꾸짖음은 계속된다.
요즘 팝송에 맛을 들인 10대들이 외국 유명가수들의 음반이나 카세트를 구입하는데 외국의 음반회사들은 『자신의 음악을 팔아 경제적 이윤을 보장받으면서 동시에 그들 나라의 가치관과 문화의식과 삶의 방식까지 함께 판다』는 것이다. 요즘 애들이 왜 햄버거와 콜라를 좋아하는지 이제야 알겠다.
물론 김씨의 글은 대중문화의 수용자를 비판한 것이 아니고 문화산업의 폐쇄성과 대외종속성을 공격한 글이지만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우리들에게도 책임의 일단이 있다고 보아 자괴심이 뒤따르는 것이다.
사실 한국의 보통사람들은 고급문화와의 접촉기회가 거의 없다. 음악당은 으리으리해서 발을 들여놓기가 겁나고 극장이나 화랑은 어디 있는지 위치조차 모른다.
결국 매달리는 곳이라곤 영화관과 라디오·TV 등의 대량 전달수단 밖에 없다.
여기서 쏟아 붓는 대로 사람들은 꿀꺽 삼키는 수밖에 딴 도리가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앞으로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
작금의 한국인은 세계에서도 드문 고학력자들이다. 학력이 높다는 것은 비판의식이 강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즐기는 것과 세뇌 당하는 것을 스스로 구별할 줄 안다.
60년대 초에 「엘비스·프레슬리」의『러브 미 텐더』와 「냇·킹·콜」의 『투 영』을 즐겨 부른 지금의 절대 후반 세대가 미국의 문화식민이 되지 않은 것이 그 증거다.
문화산업 종사자의 전횡과 질적 침체도 앞으로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시대가 그 길로 가고 있다. 김씨의 지론대로 「노래운동」이 확산되든지(그것이 창조적이라면) 좋은 노래를 생산하라는 압력이 증대될 것이다.
산업적 측면을 떠나 감상의 측면에서 보면 가요나 팝송에의 탐닉은 한때의 집탕이다. 이 열병을 앓아야 「베토벤」과 조용필을 함께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김씨의 지적은 엄숙하지만 대중으로부터 노래를 빼앗지는 말아야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