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억 코스닥 펀드 조성, 중소형주 집중 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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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9일 코스닥 시장을 위한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11일 발표될 ‘코스닥 중심 자본시장 혁신 방안’의 골자를 미리 공개했다. 한국거래소에서 코스닥 상장기업, 중기특화 증권사 관계자들과 함께한 현장간담회에서다.

금융위원장, 활성화 대책 공개 #증시 ‘KRX 300’ 통합지수 만들어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 투자 유인 #코스닥 종목 100여 개 편입 예상 #자본잠식 요건 폐지해 상장 쉽게 #지수 1.13% 하락, 시장 반응 냉랭

최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거래소·예탁원 등 증권 유관기관이 3000억원 규모의 ‘코스닥 스케일업(Scale-up) 펀드’를 조성해 저평가된 코스닥 기업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증권 유관기관이 자본시장의 중추적 기관으로서 코스닥 시장에 대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금융위에 따르면 코스닥 스케일업 펀드는 증권 유관기관의 출연으로 올 상반기에 조성될 예정이다.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1월 5000억원 규모로 운영한 ‘증시안정공동펀드’ 사례를 본떠 왔다. 그때와 다른 건 투자 대상이 코스피가 아닌 코스닥이란 점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코스닥 중에서도 시가총액이 크지 않은 저평가된 중소형주를 투자 대상으로 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기금·공제회 같은 기관투자가를 끌어들이기 위한 계획도 밝혔다. 최 위원장은 “코스피와 코스닥을 종합한 대표 통합지수를 개발하고 상장지수펀드(ETF)를 포함한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겠다”고 설명했다. 코스피·코스닥을 섞어 만드는 가칭 ‘KRX 300’ 지수는 코스닥 시장의 핫이슈다. 연기금 운용의 벤치마크(성과평가 기준) 지수가 코스피 200에서 KRX 300으로 바뀔 수도 있어서다. 이승범 한국거래소 인덱스사업부장은 “한국 자본시장을 통합하는 단일 지표를 제공함으로써 연기금이 코스닥에 자금을 투자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새 통합 지수에 대해 김동영 삼성증권 책임연구위원은 “시뮬레이션 결과 KRX 300에 속하는 코스닥 종목은 98개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국민연금의 코스닥 투자 비중은 2.6%, 3조2000억원(2017년 6월 기준)인데 이를 1%포인트 늘리면 투자금액이 1조원 넘게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코스닥 상장 문턱은 대폭 낮추기로 했다. 최 위원장은 “혁신기업의 상장을 차단해 온 ‘계속사업이익’ 요건과 ‘자본잠식’ 요건을 과감히 폐지한다”고 말했다. 세전이익·시가총액·자기자본 중 하나만 요건을 충족해도 상장할 수 있는 ‘단독 상장 요건’도 신설한다.

정부가 ‘코스닥 살리기 대작전’에 나선 것은 코스닥 시장을 통해 혁신기업으로 돈이 흘러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다. 코스닥 시장은 중소·벤처기업에 자금을 조달한다는 목적으로 1996년 탄생했다. 정보기술(IT)주 열풍에 힘입어 한때 호황을 누렸지만 길지 않았다. 2000년 IT 거품이 터진 뒤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2004년 1월 26일엔 지나치게 지수가 낮다는 이유로 기준 단위를 10배 상향(종가 44.57→445.7)하는 굴욕을 겪었다. 대표 종목이 코스피로 빠져나가면서 ‘코스피 장외시장’이란 지적도 받았다.

최 위원장은 이날 “코스닥 시장이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경제장관회의를 거쳐 코스닥 시장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11일 발표한다. 여기엔 세제 혜택도 포함될 예정이다. 최 위원장은 이미 지난 2일 한국거래소 시무식에서 “코스닥 시장에 투자하는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날 윤곽이 드러난 코스닥 활성화 대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장중 한때 840선을 넘나들었던 코스닥 지수는 이날 최 위원장 발언이 나온 직후 고꾸라졌다. 결국 하루 전보다 1.13%(9.52포인트) 하락한 829.99로 장을 마쳤다.

김용구 하나금융투자 수석연구위원은 “코스닥 활성화 대책에 대한 기대가 지난해 10월부터 미리 시장에 반영됐다”고 말했다. 코스피·코스닥 통합 지수 신설, 관련 펀드 조성 같은 내용이 과거 정부가 내놨던 대책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점도 실망감을 키운 요인이다. 실망을 기대로 돌려놓으려면 정부의 후속 대응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동영 연구위원은 “새로운 통합 지수에 연기금 자금이 활발히 유입되도록 상품 개발, 세제 혜택 확대가 필요하다”며 “결국 정부의 정책적 의지와 노력이 뒤따라야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애란·조현숙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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