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교역확대 현실적 필요성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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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9일 중공의 「텐지윈」(전기운)부수상에 이어 10일 대외경제무역부의 「썬쥐에렌」(심각인)차관보(부장조리)가 한국과 중공간 직접교역 가능성에 대한 강한 시사를 잇달아 공개적으로 언급함으로써 한·중공 양국간 경제교류가 진일보한 단계로 접어둘 시기가 멀지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부수상과 심차관보의 이같은 방침표명은 중공고위지도층이나 고위관리들이 지금까지 북한을 의식해 매우 신중했던 자세와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최후의 공개적 발언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중공의 정치체제나 관례로 미뤄볼 때 그들의 발언은 당과 행정부처 등의 사전토의 또는 합의를 거친 것으로 해석된다. 중공의 정치체제는 「덩샤오핑」(등소평)이라는 최고실력자를 정점으로 하지만 기본적으로 집단지도체제이며 중요한 정책결정은 상당한 정도의 컨센서스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잇단 발언은 외교부나 경무부(대외경제무역부)등 관련 행정부처는 물론 당중앙정치국 수준이상의 의견교환 내지는 조정이 있었다고 봐야한다.
전부수상 자신이 중공당 최고핵심기구인 정치국원이자 행정부(국무원)에서 재경부문을 총괄하는 부총리인데다 시기적으로도 25일 개최될 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를 앞두고 있다는 점등도 이를 뒷받침한다.
잘사는 나라를 최우선 목표로 하고있는 중공은 경제적으로 성공한 이웃나라 한국과의 경제교류를 확대해야 된다는 현실적 필요성과 그들의 혈맹인 북한의 입장을 헤아려야 하는 한계속에서 그동안 매우 조심스러운 대한반도정책을 취해봤다.
중공의 「전국조선경제연구회」가 지난해 11월 복건성 성도 복주에서 개최한 「조선(남북한)문제 세미나」에 참석했던 경무부 관리가 한국과의 직교역 필요성을 적극 강조했으나 이자리에 참석했던 외교부 관리는 찬·반에 대한 일체의 코멘트를 하지않고 「진지하게 경청만 했다」는 한정통한 중공소식통의 전언은 이런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해주는 것이다.
이처럼 미묘한 중공의 대한반도정책 때문에 중공은 그동안 한국과의 교류에 대해 「다주소설」(실질적 관계는 확대해나가되 이를 공개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라는 원칙에 충실해왔다.
중공은 지금까지 한·중공·양국간의 실질적 교류를 확대하려면 『떠들지 말아달라』(소설)고 한국측에 거듭 요청해왔다.
매스컴에 보도되면 북한이 이를 근거로 중공에 항의해오고 그렇게되면 중공입장이 아주 난처해진다는 이유였으며 실제로 그런 사례들 때문에 한·중공간 교류가 일시적이나마 후퇴하거나 주춤해진 때가 심심찮게 발생하곤 했다.
중공고위지도층의 이번 거듭된 발언이 「직교역」뿐만아니라 「공개적」이었다는데도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이번 중공고위충돌의 발언이 한국과의 관계발전에 대한 전향적인 시사라는 사실 외에도「한국카드」를 일본과 대만에 활용하려는 듯한 뜻을 엿볼수 있다.
그들의 발언이 일본경제인들과 만났을 때 행한 것이며 한국과 대만을 중공과의 경제협력에 적극적이라고 전제하고 일본의 분발을 촉구 또는 유도하는 뜻을 분명히 했음이 이를 뒷받침한다.
중공은 한국의 「중공 붐」을 카드로 ▲일본이 대중공무역에서 엄청난 흑자를 즐기면서도 이에대한 개선노력이 미흡한데다 중공이 적극 권유하고 있는 대중공 투자에 미온적인데 대한 압력을 가하고 ▲대만이 삼부정책(불접촉·불담판·불타협)에 적극적인 탄력성을 부여하지 않을 경우 중공시장을 경쟁국인 한국에 뺏길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함으로써 일본과 대만을 자극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중공의 대일 감정은 무역적자나 투자저조 등 경제적 이유외에도 광화료기숙사 사건, 일본의 교과서 왜곡사건 등 정치적·역사적인 측면까지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으로서는 일본에 한·중공간 관계개선을 위한 중계역을 맡겨야하느냐에 대한 강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중공고위층의 이번 발언은 북한측의 사전동의 내지 통고를 전제로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중공이 그들의 「혈맹이자 형제의 나라」인 북한도 모르게 이런 중요하고도 미묘한 문제를 불쑥 공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전제가 사실이라면 한·중공간 직교역 묵인에 대한 대가가 북한에 주어졌을 것으로 볼수 있다. 「한·중공관계는 동북아 정세를 포함한 국제정세의 흐름속에서 이해해야되며 그 기본은 역시 남·북한 관계와 궤를 같이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중공 관계개선은 북한과 미일의 관계개선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수 있다.
만일 중공이 북한과의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면 중공과 북한사이에 커다란 틈이 생겼거나 한국카드를 북한에 대한 지렛대로 사용해야하는 상황이 벌어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콩=박병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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