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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령, 김상곤에 쓴소리해야 교육이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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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미국 배스킨라빈스 31은 매달 ‘이달의 맛(Flavor of the month)’이라는 아이스크림을 홍보한다. 고객을 유혹하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명예교수인 데이비드 타이액과 래리 큐반 교수가 교육 개혁을 ‘이달의 맛’에 비유한 적이 있다. 지난 100년 동안의 미국 교육 역사를 분석한 책 『유토피아를 향한 땜질 개혁(Tinkering toward utopia)』이란 책에서다.

자사고 폐지·무자격 교장 공모 등 사실상 ‘패싱’당해 #국가교육회의 진영논리로 운영하면 ‘거수기’ 될 수도

두 석학은 학생·학부모·교사 등 교육공동체의 목소리를 외면한 일방적인 정책은 ‘이달의 아이스크림’처럼 금세 잊힌다며 은유적으로 꼬집었다. 정권마다 교육 정책을 바꾸면 현장에서는 또 바뀔 거라며 납작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 선진국 미국에서도 그런 일침이 나왔다는 게 흥미롭다.

우리나라 역대 교육 정책을 두 교수가 분석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오늘의 맛(Flavor of the day)’이라고 했을 성싶다. 정권마다 학생을 위한다며 대입제도를 뒤엎고, 같은 보수와 진보 정권이 진행했던 정책마저 없애니 말이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고교학점제 도입, 무자격 교장공모제 확대, 초·중등 교육 교육청 이양 등 메가톤급 정책이 공론화도 없이 결정됐다. 거기에는 수월성보다는 평준화의 포퓰리즘, 전국 교육청을 지배하고 있는 친(親)전교조 교육감 힘 보태주기란 내밀한 전략이 숨어 있다.

그 중심에는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있다. 김 부총리는 당초 이들 이슈를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에 넘겨 공론화한 뒤 그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최근 3개월 새 다 결정해 버렸다. 당연히 지난해 12월 27일 지각 출범한 국가교육회의의 위상이 말이 아니다. 의장을 맡은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은 “교육 현장의 논쟁과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적 공감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한데 저항에 부닥쳐 올해 8월까지로 결정을 유보한 수능·내신 절대평가와 유보통합(유치원과 어린이집 통합)을 제외하면 역할이 쪼그라들었다. 김 부총리가 국가교육회의를 사실상 패싱(passing)했기 때문이다. 엄연한 약속 위반이다.

더구나 국가교육회의를 이끌 민간위원 11명 대부분이 진보 일색인 데다 현장 교사는 한 명도 없다. 이런 인사들이 어떻게 유보통합을 추진할 것이며, 현장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겠나. 보완책으로 유·초·중등, 고등, 미래 교육 등 3개 전문위원회를 구성한다지만 그 또한 중립성을 장담하기 어렵다. 기대를 모았던 국가교육회의가 김 부총리의 들러리나 거수기가 될 거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신 의장이 진영 논리를 박차고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신 의장은 1964년 이화여대 법대 학생회장 때 한·일외교 반대투쟁에 앞장서고, 기독교 사회참여 운동기관인 크리스찬 아카데미에서 노동교육을 했던 여성 리더다. 대학 총장(2002~2006년) 시절엔 ECC(Ewha Campus Complex) 설립을 주도하는 강단을 보였다. 그를 잘 아는 이들은 “평생 독신으로 산 사심 없는 휴머니스트이자 노동법 전문가인데 색깔은 확실한 진보”라고 말한다. 2014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 진보 측 후보 출마를 제의받자 조희연 당시 성공회대 교수를 ‘협력형 리더십의 본보기’라며 추천한 것이 그 징표다. 그리고 조 후보가 당선되자 교육감직 인수위원장까지 맡았다.

그런 그에게 김상곤 정책에 쓴소리하라는 건 어리석은 주문일까. 올해 75세인 신 의장이 대한민국 교육을 살리는 데 공헌할 유일한 길은 ‘중앙’에 서서 중심을 잡는 일이다. 이념과 진영을 넘어 ‘백 년의 맛’을 만들도록 정책의 완급과 균형을 잡는 중심추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대증요법’ 아이스크림만으론 교육 개혁이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설파해야 한다. 그게 신 의장이 해야 할 일이다.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