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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방조 SNS 기업에 벌금' 시행 즉시 극우 정치인 철퇴

중앙일보

입력

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베아트릭스 폰 슈토르히 의원. [EPA]

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베아트릭스 폰 슈토르히 의원. [EPA]

혐오 발언이나 가짜 뉴스를 방치하는 소셜미디어 기업에 최고 5000만 유로(약 640억원)의 벌금을 물리는 법안이 시행된 독일에서 첫 적용 사례가 나왔다.
해당 법안이 시행된 첫날인 1일(현지시간) 극우 여성 정치인 두 명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게시물을 해당 SNS 기업이 삭제했다.

독일 극우 정치인 2인, 트위터·페이스북 글 삭제돼 # 1일 시행된 법 따라 계정 12시간 동안 정지되기도 # 가짜뉴스 등 시한 내 안 지우면 벌금 최대 640억원 #"검열" 반발 있지만 기업에 책임 지우자 효과 나타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독일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베아트릭스 폰 슈토르히 의원의 트위터가 12시간 동안 차단됐다. 쾰른 경찰이 새해맞이 인사 트윗을 올리면서 아랍어를 사용한데 대해 혐오성 문구를 동원해 비난하는 글을 그가 올렸기 때문이다.

쾰른 경찰은 트위터에 아랍어뿐 아니라 독어·영어·프랑스어 등으로 새해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슈토르히 의원은 “이 나라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냐. 경찰이 왜 아랍어로 트윗을 하느냐”고 비판하는 글을 게재했다. 그는 “야만적이고 집단 성폭행을 일삼는 무슬림 남성 무리를 달래기 위한 것이냐”고도 썼다.

독일 쾰른 경찰이 새해맞이 인사를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아랍어도 함께 사용하자 극우정치인이 비판하는 글을 트위터 등에 올렸다. 트위터 측은 글을 삭제했다.

독일 쾰른 경찰이 새해맞이 인사를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아랍어도 함께 사용하자 극우정치인이 비판하는 글을 트위터 등에 올렸다. 트위터 측은 글을 삭제했다.

2017년 쾰른에선 새해맞이 행사가 진행 중일 때 난민 출신이 포함된 남성들이 성폭력을 저질러 반난민 정서가 달아오르는 등 파문이 일었다. 경찰은 당시 북아프리카 출신 남성 수백명을 조사했다. 슈토르히 의원은 이 일을 상기시키며 경찰의 아랍어 사용을 비난한 것이다.

트위터 측은 슈토르히 의원의 트윗을 삭제하고 그의 계정을 12시간 동안 차단했다. 법이 규정한 혐오 발언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슈토르히 의원은 글이 지워지자 페이스북에 같은 내용을 올렸는데 이 역시 페이스북 측이 삭제했다.
기독사회당 슈테판 마이어 대변인도 “슈토르히 의원의 발언은 금기를 넘는 확실한 도발이다.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총선 당시 극우정당 AfD의 공동최고 후보를 맡았던 알레체 바이델(38)은 골드만 삭스 등에서 근무한 경제학 박사 출신이다.

총선 당시 극우정당 AfD의 공동최고 후보를 맡았던 알레체 바이델(38)은 골드만 삭스 등에서 근무한 경제학 박사 출신이다.

9월 총선 당시 공동 최고후보를 지낸 AfD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알리스 바이델의 페이스북 게시물도 삭제됐다. 그는 “외부에서 온 뒤 마약을 사용하고, 약탈과 학대, 흉기로 해를 입히는 이주민에게 굴복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경찰은 두 극우 정치인이 혐오 조장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유죄가 확정되면 벌금이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극우정당 리더들인 이들은 SNS 게시물 삭제가 검열이라며 반발했다. 이들은 “독일 정부가 추진한 법안이 과거 공산주의 동독의 비밀경찰 스타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슈토르히 의원은 “입헌 국가의 종말”이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유포자뿐 아니라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 등 콘텐트를 유통하는 플랫폼 기업까지 규제하는 세계 최초의 법이 시행되면서 독일에선 벌써 변화가 일어나는 양상이다.
SNS 기업들은 가짜 뉴스나 혐오 발언 등을 모니터링하고 명백한 불법 정보를 발견하거나 통보받으면 24시간 안에 삭제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거액의 벌금을 내야 한다.

벌금 부과 대상은 회원이 200만 명 이상인 SNS로, 왓츠앱 등 개인 메신저는 이 법에서는 제외됐다.
해당 기업들은 6개월마다 가짜 뉴스의 내용과 처리 내역, 삭제 비율 등도 보고해야 한다. 게시물의 내용이 애매한 경우에만 판단할 기한을 일주일로 연장해준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삭제 조치에 이어 두 여성 정치인은 사법 당국의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쾰른 검찰은 이들에 대해 공식 조사를 시작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BBC는 전했다.

페이스북 [AP]

페이스북 [AP]

독일 정부가 SNS 기업에 자율적으로 문제 게시물을 삭제하도록 했을 때엔 이행 실적이 저조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거액의 벌금을 물리는 강력한 법안을 도입하자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플랫폼 운영 기업에 게시물에 대한 책임을 지운 독일의 법안이 가짜 뉴스나 정치적 증오의 확산 통로로 변질되고 있는 SNS에 변화를 가져올 지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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