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치과·한방 … '떠다니는 병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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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9시 목포항. 짙은 안개 속에서 병원선 '전남 512호(170t)'가 뱃고동을 울리며 출항했다. 1시간30분가량 항해한 뒤 도착한 곳은 신안군 하의면 옥도. 500m 떨어진 해상에 정박하자 주민이 하나둘씩 선착장으로 모였다. 선착장의 수심이 얕아 병원선이 접안을 못 하기 때문이다. 병원선에 실린 소형 보트가 선착장으로 가 주민을 3~6명씩 데려 왔다.

"배를 두 시간이나 타고 목포 병원에 가 본 거시(것이) 작년 봄잉께, 의사 선상님(선생님) 진찰은 1년 만에 다시 받는구먼요."

송영휘(57)씨는 20분 정도 내과 진료를 받고 X선 촬영 필름까지 받아 들고서는 흡족한 표정으로 밝게 웃었다. 섬 주민들이 의사를 오랜만에 보기 때문에 이것저것 많이 물어 진료시간이 육지에서보다 훨씬 길다는 게 내과 전문의 이윤철(32)씨의 이야기다.

한방 진료실서 침을 맞던 김영자(76) 할머니는 "허리와 다리가 아파 운신하기도 힘들었는디 침을 맞으니 몸이 가뿐하다"고 말했다.

병원선 근무를 자원한 한의사 박훈평(26)씨는 "배 안 좁은 공간에 갇혀 생활하자니 답답하고 지겹지만 섬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 일조한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날 치과를 찾은 주민도 14명이나 됐다. 특히 다섯 명은 앓던 이를 뽑고 나서 통증이 없어져 날아갈 것 같다며 좋아했다. 오후 4시까지 전남 512호에서 진료받은 옥도 주민은 전체 80명의 절반이 넘는 50명. 전남 512호는 오후 5시쯤 섬들로 둘러싸여 파도가 적게 치는 곳으로 이동했고, 의료진은 바다 위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7일 오전 9시쯤 찾아간 곳은 인구 14명의 개도. 소형 보트가 선착장으로 가서 주민 8명을 태워 왔다. 무릎 등에 침을 맞던 양복자(76) 할머니는 "온몸이 아파 이제나저제나 병원배가 오기를 기다렸다"며 "육지로 나가자니 뱃삯이 많이 들어 못 나가고, 두어 달에 한 번씩 병원선이 오면 꼭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씨 등은 뭍에 일 보러 나가 병원선에 오지 못한 사람들의 몫까지 약을 타 갔다.

전남 512호는 이날 장재도(주민 12명)와 능산도(주민 50명)까지 3개 섬을 누비며 진료했다.

◆ '바다 위의 병원'=전남 512호는 전라남도가 45억원을 들여 건조해 2003년 12월 취항시켰다. 이 같은 병원선은 전국에 네 척이 있다. 전남에는 여수 등 동부권 섬들을 맡는 전남 511호(128t급)까지 두 척이 있다. 경상남도는 162t짜리를 통영항을 중심으로, 충청남도는 160t짜리를 보령항을 중심으로 운항 중이다. 공중보건의인 내과 전문의와 치과 의사, 한의사 1명씩과 간호사 3명, 방사선사.임상병리사 1명씩과 선장.항해사.취사원 등을 합해 17명이 타고 있다. 이들은 연간 210일 이상을 바다에서 산다. 한 번 출항하면 보통 열흘씩 배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하루 1~3개 낙도를 순회한다.

신안=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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