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관객 반응 시큰둥한 아시아 다국적 영화 '데이지'는 활짝 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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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하지만 완성도 면에서는 갈 길이 멀다. 다국적 기획의 시너지 효과가 충분히 발휘되지 않는 탓이다.

특히 내수보다 수출 위주의 '한류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다국적 기획에 국내 시장과 평단은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껏 까다로워진 국내 관객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중·일 배우와 스태프가 뭉쳐 만든 ‘데이지’. 왼쪽은 ‘칠검’(下)과 ‘무극’.

쉬커 감독, 리밍.양차이니.김소연 주연의 '칠검'이 대표적 예다.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개막작으로 화제를 모았으나 국내에서는 50만 명도 동원하지 못하고 고배를 마셨다. 천카이거 감독, 장동건.장바이즈 주연의 무협대작 '무극'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는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지만 국내에서는 '장동건 효과'에도 불구하고 100만 명을 넘기지 못했다.

9일 개봉하는 '데이지'는 어떨까. 한류스타 전지현.정우성과 홍콩 류웨이창 감독이 힘을 합친 다국적 프로젝트다. 무협 중심이던 그간의 영화들과 달리, '한류'의 핵인 최루성 코드를 내세운 멜로물이다.

'데이지'는 청바지 CF에서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던 전지현.정우성 콤비의 스크린 랑데부라는 점부터 화제가 됐다. 게다가 한.중.일의 정상급 배우와 스태프가 뭉쳤다. 우선,'무간도'시리즈로 홍콩누아르의 부활을 알린 류웨이창 감독이 있다.'스파이더맨2''매트릭스'시리즈에 참여한 무술감독 린디안(林迪安), 왕자웨이의 '화양연화''2046'을 작업한 우메바야시 시게루 음악감독도 참여했다.

극본은 '엽기적인 그녀''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 계속 전지현과 호흡을 맞춘 곽재용 감독이 썼다(제작 아이필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올 로케이션한 '데이지'는 세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 얘기다. 거리의 화가 혜영(전지현), 그녀에게 매일 데이지꽃을 배달하는 킬러 박의(정우성), 박의를 대신해 혜영의 사랑을 가로채는 형사 정우(이성재)가 주인공. 아시아 관객에게 어필하는 이국적 풍광에,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연출력이 발휘된 영상이 감각적이다. 감독은 연적인 두 남자를 킬러와 경찰이라는 대결 구도로 설정해 홍콩누아르적인 비장미를 더했다.

대중 멜로로서 무리없는 영화에는 장점이 있다. 한류 스타의 입지가 굳건하고 '한국산 순애보'가 강세인 아시아 시장에서 무난한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절제 없는 과잉의 감상주의가 오히려 객석의 감정선을 효과적으로 건드리지 못한다는 평도 나온다. 지적 대상은 꽃과 꽃그림을 매개로 한 사랑이라는 클리셰(상투적 장치), 평면적 캐릭터와 연기, 감상주의의 남발 등이다. 국내 관객들의 높아진 눈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데이지'는 국내 개봉에 이어 4~5월 홍콩, 중국, 일본에서 잇따라 개봉된다.

최근 2년간 쏟아진 범아시아 영화들은 '무극''칠검''신화' 등 10여 편에 이른다. 안성기.류더화 주연, 장즈량 감독의 한.중.일 합작 무협영화 '묵공'은 최근 촬영을 마쳤다. 정우성.김태희 주연의 90억원짜리 블록버스터 '중천'(조동오 감독)은 중국에서 막바지 촬영 중이다. '중천'에는 '와호장룡''영웅'의 와다 에이미(의상디자이너),'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사기스 시로(음악감독)가 참여한다.

이런 범아시아 영화들이 화제를 끌면서도 그만한 영화적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지진희를 '퍼햅스 러브'에 캐스팅했던 천커신(陳可辛) 감독의 말을 들어보자."지금은 아시아 각국의 배우와 스태프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첫 단계이자, 각 나라의 특성이 마구 뒤섞이는 퓨전 단계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씨는 "돈과 인력의 결합보다 중요한 것은 소구할만한 이야기와 장르의 개발"이라며 "이는 인력의 기계적 결합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초국적 보편성이 있는 할리우드 영화와 달리 아시아는 한국, 중화권, 일본의 감성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한류 드라마나 홍콩 무협, 사무라이 활극처럼 각 나라의 지역성에 기초하면서 보편성을 지닌, 호소력 있는 장르의 개발이 전제되지 않는 한 다국적 프로젝트는 의미있는 결과를 내기 어렵다"는 게 그의 평가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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