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현직외교관 이색논문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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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동경=박철주특파원】현직 일본외교관리가 과거 일본의 대한편견 외교에 솔직한 비판을 가하는 논문을 이례벅으로 발표, 화제가 되고 있다.
외무성 경제국의「오구라」(전 북동아시아과장)참사관이 쓴 『명치정부의 대한외교자세와 현대에의 교훈』이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명치유신이후 현재까지 대한외교는 편견의 역사로 이어져왔다. 이제 일본은 그같은 편견에서 한일관계를 해방시켜야 하며 한국은 결코 특수한 나라가 아니라 서구사회와 대등한 외국으로 인식돼야 한다』고 역설하고있다.
「오구라」씨의 이 논문은 새로 출범한 한국 민주정부에 대한 새로운 외교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이 논문은 주로 한국·중국의 정세를 분석하는 전문잡지 『동아』3월호에 게재됐다. 다음은 이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일본의 명치정부가 한국과 체결했던 강화도조약은 일본이 일방적으로 특권을 취한 불평등조약이다.
일본의 대한외교는 대서구외교의 일환이었으며 일본의 국제적 지위향상과 서구화 내지 근대화를 위해서 대한관계를 디딤돌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을 특수관계로 보는 그같은 인식이 결국은 한일합병으로 연결되었다.
명치정부의 대한자세를 오늘의 국제정세로 옮겨 비판평가 하는 것은 반드시 옳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명치정부의 대한자세에 대한 역사적인 분석에서 오늘의 한일관계에 관한 교훈을 어느 정도 끌어낼 수 있다.
첫째 교훈은 「대등한」관계와 「특수한」관계와의 미묘한 모순과 뒤얽힘이다. 미·유럽풍의 대등한 관계를 명치정부가 조선왕조에 요구하면 할수록 역사적인 전통위에서 전개되어온 특수한 관계를 뒤로 물리쳐야한다. 다른 한편 「대등한 관계」를 수립하려할수록 오히려 역사적 특수관계라는 측면이 두드러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근년 한국을 하나의 단순한 외국으로 보는 시점의 중요성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도 일본에 있어서 통상의 외국이며 그러한 인식으로 한국을 보는 것이 과거의 편견에서 한일관계를 해방시키는 제1보라는 생각에서다.
바꾸어 말하면 일본이 서구사회 여러나라와 사귀는 방식을 그대로 한일관계에 적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서구민주주의 사회체제 속에 한국을 집어 넣는 것이 일본의 대한외교에서 큰 기둥이 된다.
오늘날도 한일관계는 특별한 인접국가라든가,「이사」할 수도 없는 관계라든가 해서 특수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그것이 현실적인 대한외교에도 상당한 정도로 반영되고 있다.
문제는 명치시대처럼 한일간의 특수성강조가 일본의 대중공, 대소련, 대미국외교의 수단으로 연결되는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우선 발아래 한일관계를 단단히 해두어야 일·중공, 일·소련외교에도 자신을 갖고 전개할 수 있다』는 이야기나『한국과 잘 지내야 비로소 구미제국과도 우호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도 있으나 이 같은 생각은 뒤집어 말하면 한일관계를 다른 나라와의 관계촉진을 위한 수단만으로 고려하고있다는 것이 된다. 멀리는 명치시대와 똑같은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명치시대의 대한외교가 결국은 대미외교의 일환이며구미식민지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일본을 지키기 위한 대미·대유럽정책의 일익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일본의 한반도정책이 어디까지 일본안보체제를 기축으로 하는 대미외교정책의 일환인가 하는 기본적인 의문에 대답해야한다.
일본의 대한반도정책은 다른 목적을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내적논리와 목적을 가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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