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진다"는데…그렇다면 노함(老艦)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6ㆍ25전쟁 때 인천상륙 작전으로 전세를 뒤엎은 맥아더 장군은 1951년 “노병(老兵)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는 말을 남기고 52년 군 생활을 마쳤다. 그렇다면 30년 넘게 영해를 지켜 온 해군의 노함(老艦)은 어떻게 될까.

충남함

충남함

해군은 27일 진해군항 서해대에서 국산 호위함인 충남함(FFㆍ1500t)과 초계함인 여수함ㆍ진해함(PCCㆍ1000t), 참수리 고속정(PKMㆍ130t) 3척 등 6척의 국산 전투함들의 전역식과 퇴역식을 열었다.

이날 행사엔 각 전투함의 역대 함장과 승조원들이 ‘전우’와도 같은 전투함들과 오랜만에 재회했다. 특히 충남함의 초대 함장인 윤광웅 전 국방부 장관과 14대 함장 정호섭 전 해군참모총장, 여수함 5대 함장 최윤희 전 합참의장 등이 참석했다.

윤광웅 전 장관은 “우리와 함께했던 이 함정들은 영원히 역사 속에 남게 되지만, 언젠가 다시 다른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오기를 기원한다”며 “그동안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거친 파도를 가르며 주어진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충남함ㆍ여수함ㆍ진해함, 고속정들에 큰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여수함

여수함

행사의 백미는 함정에서 취역기를 내리는 강하식이었다. 취역기는 해군이 조선소로부터 인도한 함정이 취역할 때 마스트에 게양하는 삼각뿔 모양의 기다. 이 깃발은 취역식 이후 전역ㆍ퇴역식 전까지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현역에서 물러난 충남함ㆍ여수함ㆍ진해함은 해군의 국산 전투함 시대를 연 주역들이다. 국산 호위함은 1981년 1번함인 울산함을 시작으로 9척이 건조됐다. 초계함은 1983년 동해함을 시작으로 28척이 지어졌다. 충남함은 울산급 호위함 3번함이고 여수함과 진해함은 각각 포항급 초계함 8번함, 9번함이다. 국산 호위함ㆍ초계함은 1998년 해군이 광개토대왕함(3200t)급 구축함을 도입하기 전까지 해군의 주력 전투함들이었다.

1985년 7월 취역한 충남함은 대양을 누빈 함정으로 유명했다. 91년 우리 해군 최초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했고, 이듬해에는 해군 최초의 세계 일주를 했다. 전비태세 최우수함, 최우수 포술함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이 있다. 해군 함정의 기준을 의미하는 ‘벤치마크 십’(Benchmark ship) 칭호를 받았다. 여수함과 진해함은 각각 86년과 88년 취역했다. 이들 전투함은 고속정과 함께 연안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진해함은 99년 제1연평해전과 2002년 제2연평해전에도 참전했다.

진해함

진해함

이번에 퇴역하는 고속정은 참수리 293, 296, 297호정은 최전방에서 영해 수호 임무를 수행했다.

충남함ㆍ여수함ㆍ진해함은 전역식을, 참수리 고속정 3척은 퇴역식을 치렀다. 함정의 전역식과 퇴역식은 사람의 호적에 해당하는 함대세력표에서 이름을 지워 현역에서 물러나는 절차를 뜻한다. 다만 전역한 함정은 예비역으로 편입돼 유사시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보관한다. 충남함ㆍ여수함ㆍ진해함은 해군8전투훈련단의 예비군 훈련함으로 운용된다.

퇴역한 참수리들은 지방자치단체에 넘겨져 안보전시관으로 활용되거나 외국에 군사원조 물자로 제공된다고 한다. 해군 호위함ㆍ초계함의 경우 함명을 지명(地名)을 따서 짓기 때문에 해당 지명의 지자체에서 관심이 많다고 한다. 지난달 서울 문을 연 서울함 공원의 서울함은 2015년 12월 퇴역한 1500t급 호위함인 서울함을 한강으로 끌고 와 만들었다. 그러나 재생의 기회를 갖지 못한 퇴역함은 다른 전투함의 사격 목표인 표적함으로 함정의 생애를 마친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