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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소방관에게 돌을 던지긴 쉽지만

중앙일보

입력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후진적인 안전 불감증, 고질적인 시스템 부재…. 29명의 생명을 앗아간 충북 제천시 복합상가 화재 참사는 우리 사회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부실 소방점검에 목욕용품을 두느라 꽉 막힌 비상구, 작동 않는 스프링쿨러, 소방차 진입을 막는 불법주차, 정치적 유불리만 좇는 여야의 정치공방까지. 매번 반복하지만 늘 그대로인 총체적 부실을 까발려 보여준다.
"이번에도 또 인재(人災)"라며 당국(제천소방서)의 초기대응 실패를 질타하는 비난 여론도 여느 대형 사고 때와 똑같다. 사실 누구나 다 알면서도 '설마 하는 마음'과 '나 혼자 편하자는 이기심' 탓에 다들 눈 질끈 감은 사이 또 다시 벌어진 비극인데도 분노의 화살은 실질적인 원인 제공자보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현장 인력에 주로 쏠린다.

22일 오후 충북 제천 복합상가 화재 진압을 마친 소방관들이 뒤늦은 식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22일 오후 충북 제천 복합상가 화재 진압을 마친 소방관들이 뒤늦은 식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유족과 전문가의 입을 빌어 제천소방서를 비판하는 이유는 대략 이런 것들이다. "출동할 때 건물 설계도를 확보하지 못했다." "주차된 차량을 어떻게든 치우고 사다리차를 대야 했는데 (차 빼달라고) 받지도 않는 전화를 거느라 시간을 낭비했다." "2층 여자 사우나 유리창부터 깨야 하는데 물만 뿌렸다." "8층 외벽에 매달린 사람 하나 살리자고 구조대원이 메트리스 까는 데 집중하느라 2층에서 희생자가 많이 발생했다." 요약하자면 소방관들이 우왕좌왕 하는 통에 골든타임을 놓쳐 인명피해가 커졌다는 비난이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다 맞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부실대응과 판단착오의 연속이다. 하지만 정말 현장의 소방관들이 매순간 잘못되거나 안인한 선택을 했고 그게 희생을 키운 주된 원인일까. 면적 883㎢에 인구 14만 명, 소방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소방대상물만 2166곳인 제천을 책임지는 제천소방서에 구조대원은 13명이 전부다. 그나마도 3교대라 사고 당시엔 4명만 근무중이었다. 화재 발생 7분만인 오후 4시 현장 처음 도착한 화재진압 대원 4명은 폭발을 막기 위해 대형LP가스통 화재진압에 집중했다. 9분 뒤 도착한 구조대원 4명은 건물 외벽에 대피해있던 남성 1명을 구하려고 메트리스를 깔았다. 4시30분이 넘어 비번인 소방관까지 전원이 현장에 합류했기에 4시38분 2층 사우나 통유리를 깨고, 4시42분 비상구를 통해 내부에 진입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전문가의 시각으로 판단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한 인력과 장비, 그마저도 당장 쓸 수 없는 주변 여건 탓에 피해가 커졌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만약 설계도면 찾느라(충북소방본부는 현장 소방관에게 디지털로 도면 등 정보를 전송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출동을 지체했다면, 비록 불법이라지만 주차차량을 주인 허락없이 사다리차로 밀고 진입했다면, 화재진압 대원이 유리창부터 깨느라 1층 불길을 잡지못해 가스가 폭발했다면, 다른 누군가를 살리겠다고 당장 건물 외벽에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이 역시 또 다른 비난에 직면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을 모두 살렸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문제가 있다면 이번 일을 계기로 바로잡고 책임질 사람이 있다면 잘잘못을 가려 책임을 지우면 된다. 하지만 전문가의 현장 판단을 불신한채 무조건 돌만 던져서는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