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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우리 사회는 왜 아플까, 의사의 눈으로 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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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중앙일보·교보문고 선정 '2017 올해의 책 10'

아픔이 길이 되려면

아픔이 길이 되려면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지음
동아시아

[인문]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의사는 진료실에 앉아 “어디가 아파서 오셨습니까”라고 묻는다. 하지만 연구실에서 “이 사람은, 이 사회는 왜 아프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의사도 있다.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이라는 분야의 의사다.

이 학문은 누군가 특정 질병을 앓게 된 경위를 개인의 탓으로 여기고 치료하려는 관점에서 벗어나, 그의 직업이나 처해 있는 환경이 질병을 얻는 데 기인한 바가 무엇인지, 나아가 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묻고 나아갈 방법을 모색한다. 개별 인간이라는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모여있는 숲을 연구하려는 학문인 것이다.

김승섭 교수는 사회역학자다. 철저히 이 학문의 관점에서 쓰인 그의 첫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그가,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고통을 직시하면서 인간을 이해하려는 의사이자 사회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얼마나 오랜 시간 궁구하고 고민했는지 알려준다. 또한 가운을 입고 피와 오물이 쏟아지는 현장에서 분투하는 것뿐만 아니라, 연구실에서 부조리한 사회와 맞서 싸워 결과물을 내는 것도 치열하고 준엄한 의사의 길임을 보여준다.

그가 이 책에서 증명해야 하는 화두는 이런 것이다. 우리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득이 없는 노인이, 차별에 노출된 결혼 이주여성과 성소수자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누군가가 과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증명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은 이런 명제를 납득하지 못한다. 그리고 어떤 문제는 당연함에도 첨예해서 과학적 증명 자체가 매우 지난하다. 이에 대해 그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데이터가 만들어질 때까지 계속 그들이 병들고 다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것인가?”라고 되묻는다.

그래서 그가 입증하기 위해 나열하는 화두는 어쩌면 상식에 가깝다. ‘낙태를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금지하면 사회적인 악영향이 발생한다.’ ‘동성애는 절대로 질병일 수 없다.’ ‘총기 허용은 결국 사망자를 늘린다.’ ‘성소수자를 사회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재난 생존자를 사회적인 입장에서 체계적으로 다뤄야 한다.’ ‘해고 노동자의 삶은 끔찍하다.’ ‘가습기 살균제란 처음부터 윤리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었다.’ 하나같이 너무나도 지당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머리말에서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온전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라고 밝혔다. 모든 것에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학자의 언어다. 하지만 누군가가 보기에 여기 기술된 문제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이 지극한 당연함에 눈물이 난다. 왜 그는 기어코 이것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서 논리로 맞서 싸워야 하는가. 또 왜 세상에서 아픔은 사라지지 않고 길이 되어야만 하는가. 이것들을 증명해야 하는 일이 그 한 사람의 숙명인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숙명인지는 새해를 맞을 우리가 이 책을 읽고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다.

남궁인 의사·'만약은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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