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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이 비행기 티켓 끊었는데…화마가 앗아간 가족여행의 꿈

중앙일보

입력

지난 21일 오후 3시53분 충북 제천시 하소동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 중앙포토

지난 21일 오후 3시53분 충북 제천시 하소동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 중앙포토

“큰딸이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다섯 식구 첫 해외여행 앞두고 있었는데….”

최씨 내년 1월 20일 베트남 가족여행 앞두고 사고 당해 #최씨 자녀 셋 키우려 조리사·대리운전·우유 배달까지

22일 충북 제천시 고암동 명지병원 장례식장. 제천 화재 참사로 부인 최순정(49)씨를 잃은 이규형(52)씨는 “아내가 가족끼리 처음으로 가는 해외여행을 앞두고 참 좋아했는데….”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씨는 “대학 3학년인 큰딸이 학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번 돈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둘째가 고3이라 대학 진학을 앞두고 가족여행을 가려 했다”며 “큰딸이 유럽사람들이 많이 가는 좋은 휴양지를 예약했다고 말해 다들 기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 가족은 내년 1월 20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베트남 여행을 갈 예정이었다.

지난 21일 오후 3시53분 충북 제천시 하소동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 중앙포토

지난 21일 오후 3시53분 충북 제천시 하소동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 중앙포토

이씨는 화재 당시 부인 최씨와 세차례 통화를 했다. 화재가 발생한 지난 21일 3시55분 차량에 문제가 생겼다는 문자가 들어와 부인 최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씨의 차는 차량에 문제가 생기면 자동으로 문자가 가는 서비스가 등록돼 있다.

이씨는 당시 최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여보 큰일 났어 불났어’라고 말해 빨리 대피하라고 했다. 옥상으로 올라간다고 했고 그렇게 두 번 통화했는데 세 번째 통화할 때 중간부터 말이 없었다”며 “아마 그때 유독가스 때문에 쓰러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건물 7층에서 발견됐다. 발견 당시 특별한 외상은 없었다.

유족들은 최씨가 자녀 셋을 키우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고 설명하면서 “이제 좀 여유가 생기려고 했는데”라며 오열했다.

10년가량 인근 고교에서 조리사로 근무해 온 최씨는 오전 6시에 출근해 오후 2시30분까지 학교에서 근무했다. 퇴근 후엔 사고가 난 건물 헬스장에서 오후 6시30분까지 운동을 했다. 헬스장은 4년가량 다녔다.

지난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한 병원에 마련된 유족대기실. [연합뉴스]

지난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한 병원에 마련된 유족대기실. [연합뉴스]

최씨는 운동을 마치고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남편과 함께 대리운전했다. 농번기엔 신랑이 벼 베면 1t 트럭으로 벼를 정미소로 나르기도 했다.

한 유족은 “셋을 키우느라 아이들 어릴 때 우유 배달을 할 정도로 참 열심히 살았다”며 “조금만 일찍 손 썼으면 이런 일 없지 않았을까.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남편 이씨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이런 사고가 더는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제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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