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아이

국제정치의 새 유행어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또 다른 신조어 중엔 요즘 일부 블로거들 사이에 유행인 '파자마히딘'이 있다. 이슬람 전사를 의미하는 '무자히딘'에 잠옷을 의미하는 파자마를 합성한 단어다. '파자마히딘'은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서 세상의 관심사에 대한 담론과 잘못된 팩트를 뒤집자는 일종의 담론 전사들이다.

이런 파자마히딘은 요즘 공식 언론이나 주류 지식인들이 지배하는 오프라인 매체의 담론지배나 여론몰이에 대단히 비판적이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신념에 가득 찬, 어디에도 고용되지 않은 비정규직 여론 전사들이다.

이들의 영향력은 이미 지난번 미국 대선이나 중국의 언론검열에 대한 항의, 미군의 포로학대에 대한 폭로전 등에서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새로운 팩트로 논리의 오류를 꼬집고, 일방적 선전이나 홍보의 이면과 의도를 삽시간에 대규모로 공개.확산시켜 정치인이나 특정 정부 정책의 정당성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또한 저비용의 인터넷에서 무료로 확산되는 논리를 바탕으로 아주 짧은 시간에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엄청난 조직화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조직화는 플래시 몹의 형태처럼 놀이와 상업성을 겸할 때도 있지만 반세계화 시위처럼 이념과 행동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나라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러시아의 '실로비키'로 상징되는 집단은 조직과 관료를 장악하는 전통적인 것이다. 하지만 파자마히딘의 힘은 탈조직적이며 비전통적이다. 실로비키의 힘은 대부분 한 나라 안에 머문다. 국제적 연대가 필요할 때엔 외교와 함께 국제기구의 규약이나 조약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파자마히딘의 힘도 환경.지뢰문제 등에서 보이듯 때때로 세계적 이슈에 대한 지식인들의 범세계적 연대와 조직화에 기여하고 영향을 미친다.

19세기에는 산업의 힘이, 20세기에는 과학의 힘이 세계적 권력과 영향력의 원천을 국가에 주었다. 영국과 독일, 미국.소련이 가졌던 영향력은 대부분 산업과 과학(특히 핵 물리학)의 힘을 지배한 국가들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냉전 후 21세기의 국제정치 질서는 아직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알카에다는 인터넷을 통해 무자히딘을 조직하고 동조자를 규합하는 사이버전쟁을 벌인다. 핵 물리학의 힘도 인도.파키스탄.이란.북한에서처럼 접근.보유하겠다는 세력의 위협을 받고 있다. 아직 이를 통제하고 관철할 명확한 일반이론과 합의가 없이 과거의 힘이 불안전하게 작용할 뿐이다.

새로운 질서는 새로운 힘의 원천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동반해야 한다. 아직까지 국제정치에서 국가는 최고의 행위자며 권력자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적 힘의 원천은 1648년 베스트팔렌 체제 이전 유럽에서 보였던 국가의 힘을 상정한다면 꼭 일반적이고 영속적일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국제정치의 영역에서도 정보혁명의 영향력은 혁명적이다. 정보혁명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산업과 국가의 힘의 역전을 가져올 수도 있다. 산업세력이 국가에 지급하고 받는 혜택이나 제재에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향후 몇 년 내 큰 규모의 국가의 힘을 줄이고 작은 국가나 집단의 권력을 강화할 수도 있다. 냉전종식 후 신안보구도에 관한 전략은 이런 비전통적 흐름과 창발성(創發性)에 대한 이해를 함께해야만 제대로 입안될 수 있다.

김석환 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