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정보정치」청산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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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6공화국의 대통령이 취임하던 25일 전국 7대도시에서는 격렬한 반대시위가 벌어졌다.경축분위기의 한쪽 그늘에는 최루탄과 화염병이 나는 시위가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노태우 새정부의 출범을 보는 시각에는 그만큼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고 있다.
민주와 화합을 위한 온갖 공약과 제스처에도 씻기지 않는 지역간·계층간의 앙금과 분열, 반감과 위화의 틈새는 쉽게 메워지지 않을 만큼 깊게 패어있다.
노정부가 첫 국무회의에서 대 사면을 의결하고 민주화합추진 위의「민주발전과 국민화합 건의서」를 채택하는 일로 국정심의를 시작한 것도 그런 연유일 것으로 짐작된다.
민화 위의 건의가 있기 전부터 노 정부는 6·29선언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민주화조치를 약속했다.
노 정부의 순항을 점치는 측은 그와 같은 공약이 무리 없이 실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노 정부는 우선「정치의 정상화」를 실현할 것을 약속했다.
민주화와 권위주의 청산을 내걸고△청와대 기구축소△내각권한 강화△정당의 민주화△국회 기능의 활성화가 기약되고 있다.
노정부는 야당에 대해 동반자적인 정치를 펼칠 것을 공언했고 중요국정에 대한 초당적 대처를 제의했다.
노 정부는 야당에 대해 정부 조치에 대한 설명의 기회와 여-야 고위정치회담의 기회도 확대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 국회의 운영과정에서 뿐 아니라 앞으로 새 국회에서 처리될 국회법개정과 국정감사법의 제정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반영될 것이다.
그동안 정치의 목을 죄는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던 정치자금도 자연히 흐를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미 구체적인 검토가 진행중인 정치자금법·정당법개정 안에는 정당한 정치활동이 보장되는 조치들이 포함돼야 할 것은 물론이다.
노 정부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던 편의적 행정조치들과 부당한 법률에 대한 개선을 이루겠다고 했고 그와 같은 법률들의 개폐를 위한 작업에 착수할 것을 이미 언명한바 있다.
국가보안법·집회시위법·형법의 일부 독소조항 등이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되어 왔음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노 정부는 그런 법률들과 정부의 자의적 명령을 가능토록 하는 조치들에 대해 즉각적인 검토를 시작하고 개정하는 노력들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노정부는 국민기본권의 완벽한 보장을 약속했으며 부당한 행정처분에 대한 재량권 축소를 다짐한바 있다.
노 정부는 언론의 자유를 위해 언론에 대한 공권력의 개입 배제를 명백히 공약했다.
노 대통령이 약속했던 대로 재산을 공개하고 친척·친지 등 주변관리를 철저히 해 나가면 그런 것들도 정치풍토에 새바람을 불어넣게 될 것이다.「각하」「하사」와 같은 용어를 쓰지 않는다는 외형적인 변화가 권력의 내면에 대한 인식을 바꿔 가는 구실을 할 것으로도 기대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변화로 기대되어야 하는 부분은 법률의 개정, 용어의 선택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거의 관행화되어 왔던 권위주의적 지배방식에 찌들고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 정치행태를 바꿔나가야 하는 일일 것이다.
그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이른바 정보정치의 청산이다.
민화위는 안기부의 기능을 국외정보와 국내의 정보수집·작성·배포 등 보안업무를 주로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노 대통령도 선거기간동안 안기부의 쇄신과 군 수사기관의 대 민간활동을 중지시킬 것을 언약했다.
정보정치를 중지시키는 것이야말로 새 정부의 변화에 대한 의지를 가장 단적으로 표출시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자의적인 연행과 심문, 각 행정기관·정당·언론기관 등에서의 노골적인 정보수집활동은 물론이고 그와 같은 정보에 의존하는 정치행위를 중단하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할 것이다.
군의 정치적 중립도 노 정부의 가장 중요한 약속의 하나다. 노 대통령 스스로가「군정종식」을 선언했다.
노정부가 새 내각을 구성하면서 청렴과 함께 문민화에 대한약속을 거듭 상기한 점은 중요한 진전이다. 실제로 노대통령이 스스로 문민정치 실현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의 일단이다.
6·29이후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제시된 정치적 발전에 대한 공약은 부분적으로는 이미 시행되고 앞으로 법개정, 또는 내각과 정당의 운영과정에서 실현이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쪽으로는 그와같은 약속들의 성실한 실현 전망에 대한 의구심도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청와대기구 축소와 같은 것이 그 한 예이며 민정당의 총무경선 등 당내 민주화를 실현하겠다는 주장도 당헌개정과정에서 지켜지지 못했다.
당내의 수구파가 그와 같은「성급한」민주화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그런 이의가 용납됐다는 사실은 노정부가 공언하고 있는 민주화된「발상의 전환」에 의문을 던지게 하는 것이다.
노 정부의 전도를 비관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측은 제5공화국을「승계」한 제6공화국에 내재하는 이러한 제한에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노 정부는 비상대권도 없고, 국회해산권도 없는, 과거에 비해 권한이 현저히 축소된 「5년 단임」의 정부다.
이 정부는 또「37% 대통령」이라는 취약함을 극복해야 할 입장에 있다.
새 정부에는 광주사태라는 치유되지 못한 유산이 떠넘겨져 있으며 권력형 부정부패문제 등 제5공화국의「재심」이라는 부담도 지워질 것이 분명하다.
정부의 통제력이 느슨해지는 틈을 타 급격히 분출될 욕구들이 새 정부의 안정유지 능력을 벗어나 넘칠 경우「힘의 논리」가 다시 고개를 쳐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당장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안정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면 새 정부가 커다란 시련에 봉착하게 될 것임을 노정부나 여당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새 정부에 대한 이같은 낙관과 비관의 교차 속에서 국민들은 과연 새 정부가 어느 정도의 정치발전을 이뤄나갈수 있을지 주시할 것이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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