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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생색내기용 ‘정책성 보험’이 실패하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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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하현옥 경제부 기자

하현옥 경제부 기자

지난달 15일 경북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한 이후 전국의 풍수해보험 가입 건수가 급증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달에만 풍수해보험 신규가입(주택)은 2만6000건 늘었다. 하루 평균 1000건의 신규 가입이 이뤄진 셈이다.

풍수해보험은 지진·태풍·홍수 등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정책성 보험이다. 정책성 보험은 정부가 요구하고 보험사가 개발해 판매하는 상품이다. 풍수해보험처럼 보험료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보험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정부의 지원으로 시장에서 선택받은 풍수해보험과 달리 정책성 보험만 놓고 따져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흑역사로 점철돼 있다. 역대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성 보험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박근혜 정권 때 성폭력·가정폭력·학교폭력·불량식품 방지 등 4대 악을 근절하기 위해 ‘4대 악 보상보험(행복 지킴이 상해보험)’을 내놨지만 한 건도 팔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명박 정부 시절 ‘녹색성장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전거 보험’과 ‘녹색 자동차보험’도 성공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도 이런 정책성 보험의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위원회는 고혈압과 당뇨 등 만성질환자도 가입할 수 있는 유병자 실손의료보험과 소방관 등 고위험 직군,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성 보험의 출시를 추진하고 있다.

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자는 명분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시장보다 정책 논리가 앞선 어설픈 보험 상품의 출현이다. 보험사는 사업성이 부족하거나 손해율이 높아도 정부의 압박에 보험료를 최소화한 상품을 내놓게 된다. 그 결과 가입자는 없고 손실은 보험사가 떠안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보험사의 부실은 결국 다수의 보험 가입자에게 보험료 인상 등의 피해로 돌아온다. 게다가 공적 영역이 담당해야 할 책임을 민간 보험사에 떠넘긴다는 논란도 빚어진다. 소방관 보험은 공무원인 소방관이 직무로 인해 발생할 위험에 대한 보험이다. 필요하다면 공적 보험을 통해 해결해야지 민간 보험사의 팔을 비틀 일은 아니다.

풍수해보험처럼 국민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정책성 보험은 필요하다. 하지만 정권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생색내기 성’ 정책성 보험은 실패한 보험상품의 숫자만 늘릴 뿐 보험 가입자와 보험사, 정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현옥 경제부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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