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 소방관의 죽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시뻘건 불바다와 칠흑의 연기 속에서 생명 줄인 산소마스크가 벗겨진 채 고석창 소방사(32)는 쓰러졌다. 그리고 숨졌다. 남달리 용기와 책임감이 뛰어났던 법학사 출신의「1등 소방관」-.
이날 지하공장 화재 현장에서도 그는 가장 먼저 불길 속에 뛰어들었다.
별명이「불새」. 인명구조 특공 요원으로 수십차례 사선을 넘나들며 붙여진 별명이었지만 워낙 책임감이 강해「고지식」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난해 여름 서울 양평동 대륙제관 화재 때는 얼굴에 2도 화상을 입어가며 6명의 종업원을 불 속에서 구출해 냈다. 그때 입은 얼굴의 화상이 훈장처럼 남았었다.
『어제 밤 대은이 생일이라고 케이크를 사와 함께 노래를 부르시더니….』
시신이 안치된 서울 고대 구로병원 영안실에서 두 아들을 껴안고 통곡하던 젊은 미망인 최문영씨(30)는 끝내 실신했다. 두 아들 정진(8·도신국교 1년)·대은(4)군도 엄청난 비극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의 통곡에 따라 울었다.
56년 전북 김제에서 빈농의 7남매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나 고학으로 대학(전주대 법학과 야간)까지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인 80년 지방공무원 공채시험에 합격돼 전북도 교위에서 5년간 행정주사보로 일하다 86년「더욱 보람있는 일」을 찾아「소방의 길」로 뛰어들었다.
격일로 24시간을 꼬박 지새우는 격무 속에 월19만원의 박봉에도 불평 없이 1백50만원 짜리 단칸 셋방에서 세 가족과 함께 단란하게 살아온 모범가장. 늘 비상대기 근무에 고향의 노부모를 자주 찾아 뵙지 못하는 불효를 자책해오던 효자.
그런 젊은 소방관이 화재현장에서 숨졌다.
『이렇게 순직해도 국립묘지 안장이나 보상금 지급 등 원호혜택이 전혀 없습니다.』
『한번 진화작업을 끝내고 나면 시커먼 가래를 한 사발씩 토해내요.』
초라한 빈소 앞에서 30여명의 동료소방관들이 잠긴 목소리로 털어놓는 하소연. 과연 사회는 이들을 이렇게 보답해야만 할까. <김석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