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정부 개입 고리 끊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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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원칙'보다 '대화와 타협'을 앞세웠던 노무현 정부의 권기홍 초대 노동부 장관은 3월에 창원으로 내려갔다.

노동부 간부들은 "정부가 개별 노사 문제에 개입하면 분규가 해결돼도 문제고, 안돼도 문제"라며 권 장관의 창원행을 극구 말렸다. 그런 식으로 해서 분규가 해결되면 노조는 이후부터는 사사건건 "정부가 나서라"고 할 게 뻔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파업이 해결되지 않으면 '무능한 정부'라는 꼬리표가 붙을 게 뻔했다.

권 장관은 노동부 간부들의 직언을 무시했다. 권 장관이 중재를 해 준 덕분에 두산중공업 사태는 해결됐다. 당시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장관이 내려와 권유하는데 그걸 안 받아들일 만큼 배짱 큰 기업이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 뒤부터였다. 노동계는 툭하면 회사가 아니라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기 시작했다.

노사 간 자율 해결은 온데간데없어졌다. 김대중 정부에서 마지막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방용석(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씨는 원풍모방 노조위원장 출신이다. 당시 상황을 놓고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러고도 경제가 돌아갑니까"라고 말했다.

두산중공업 사태가 있은 지 꼭 3년이 지난 2006년 철도노조가 불법 파업에 들어갔다. 중앙노동위의 직권중재 회부 결정을 무시한 채 돌입한 파업이다. 여론은 철도노조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시민들은 "정말 걸핏하면 왜 이러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자 철도노조는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법과 원칙만 강조할 게 아니라 노사가 만날 수 있는 책임 있는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대놓고 정부의 개입을 촉구한 것이다. 어쩌면 '불법 파업을 해도 정부가 개입해 정치적으로 풀면 된다'는 생각이 노조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동부는 이날 "앞으로 개별 사업장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권 장관 이후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3년이 걸린 셈이다. 이번 철도노조의 불법 파업이 노사관계 선진화의 전환점이 됐으면 한다.

김기찬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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